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류샤오보 지음, 김지은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중국에 공산주의가 있는가?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싸구려 제품을 만드는 나라, 각종 짝퉁과 가짜 제품이 판치는 나라이다. 신문에 나오는 중국 관련 기사는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한때 서구 지성의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68 혁명의 이론적 토대였던 마오이즘의 나라 중국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중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던 류샤오보는 톈안먼민주화운동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수차례 투옥과 출옥을 거듭했고, 현재도 투옥중이다. 그는 중국의 인권운동을 주도한 공로로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류샤오보는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 대외관계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류샤오보는 요즘 중국 젊은이들이 물질주의, 기회주의, 이기주의, 맹목적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다. 모두가 중국공산당이 통치의 편의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퍼뜨린 가치관이다. 그런데 우스운 게 물질주의, 기회주의, 이기주의,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애국주의마저도 공산당과는 친화력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한국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아닌가? 저자는 이러한 중국인들의 성향을 분열성 인격장애’, ‘집단 정신분열증이라고 다소 격하게 비판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견지해 온 중화주의에다가 새로운 물질주의적 가치가 혼합되어 나타난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톈안먼민주화운동 이후 정권 안정을 위해 덩샤오핑이 발전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국가가 조종하는 사유화, 시장화를 통해 공산당 관료들과 그의 가족들에 빌붙은 자들은 사유재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누구나 성공신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중국 민중들은 약삭빠른 관료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세력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공산당 입당은 출세하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본주의보다 더 부패한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라기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국가권력에 자본주의식 경제 활성화가 결합되어 가장 부패한 형태의 관료제가 만연했다.

중국이 2015년에는 일본을 넘어서고, 적어도 2050년이면  미국을 넘어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도 있지만, 문제는 경제 규모에 어울리는 민주화를 이룰 것이가이다. 예전과 같이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한 중국은 머지 않아 톈안먼민주화운동보다 더욱 커다란 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수십 년간 중국 민중이 여전히 무지한 상태로 억눌리고 착취당하며 지낸다면, 부패한 관료제와 저급한 국민들이 사는 국가가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사실이 인류역사에 큰 치욕이 될 것이다. 아직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부족하고 민중과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 류샤오보 같은 운동가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대부분 시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뒷부분에 약간의 선언문, 편지,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시평들을 모아 놓은 책이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못하다. 긴 챕터는 30여 페이지 정도가 되지만 짧은 것은 10페이지도 안 된다. 각 챕터는 주로 2000년대의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간행물에 실렸던 글들이다. 기본적으로 시평 모음집이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라든가 정황이나 용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로는 우리가 잘 모르는 (굳이 알 필요가 없어 보이는) 매우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때로는 격한 비판과 주장이 많이 나오지만 그 강도에 비해 논거가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반적인 글의 수준도 학술적이라기보다는 다소 피상적이고 감성적이며 때때로 어휘들도 (다소) 격하다. 그렇다고 통쾌한 풍자나 가슴 후련한 독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용이 휙휙 지나가고 뜬금없이 종합화를 시도하고 근거 없이 주장을 내세운다. 분석의 깊이가 부족하다면 성찰의 깊이로 이를 만회할 수 있을 테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중국 입문서로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현대 중국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거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글을 읽고 싶다는 동기가 있다면 모를까, 선뜻 완독할 용기가 나지 않을 책이다.

이런 문제는 저자의 학문적 배경(중문학 전공자)과 책의 구성에서 나오는 한계로 보인다. 저자가 사회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이 책이 애초에 단행본을 의도하고 A to Z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긍정적 에너지를 믿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같이 관료제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린 데 크게 실망했다. 공산주의 대국 중국은 분명 변해야 한다.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류샤오보가 중국 당국에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탄압받았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빠졌지만 류샤오보는 2004년에 이라크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이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이자 친서구주의자이며 비밀 가톨릭신자이다. 그의 이러한 정체성이 그의 글 면면에 드러나고 있다. 서구세계는 류샤오보라는 훌륭한 동반자를 찾은 셈이고 노벨평화상이라는 묵직한 무기로 중국(과 독재국가들)을 압박할 좋은 구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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