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덕에, 모든 일이 멈추어 본의 아니게 참으로 한가로운 백수신세로다.

이 참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책들을 꺼내 읽는다.

“벽이 만든 세계사 _ 함규진”

저자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세계 역사 속의 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까마득한 대학시절 운 좋게도 프랑스 유학하신 교수님을 통해 미시사를 접했는데, 이렇게 ‘벽’이라는 주제로 그 시대의 큰 역사와 미시사를 함께 접하니 읽는데 가속도가 붙는다. 가장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은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장벽’이지만, 남북분단의 상황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목도하고 사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베를린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다시 읽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이 뻥 뚫린 장벽 틈에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얼싸 안고 춤을 추었다.”

지난해는 동서독 시민들이 장벽을 무너뜨린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 여름 베를린에서 열린 예술축제 [Umgemütlich VI(불편한 기운)]에 참여 하면서 평생 베를린 장벽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온 작가 ‘Günter Schäfer‘씨를 만났다. 유쾌한 동네 아저씨만 같은 그의 작품은 의외(?)로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한 사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 Tor)을 경계로 두고 서독에서 열린 세계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을 장벽의 구멍 사이로 훔쳐보는 젊은 동독군의 눈이 기억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나는 그와 동서독 분단, 남북분단, 베를린 장벽에 대해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북이 통일 되면 그는 이곳에 와서 우리 한반도의 벽 이야기 또한 담을 것이라 했다.


“Wir sind ein Volk!(뷔어 진트 아인 폴크!) :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

“Wir sind das Volk!(뷔어 진트 다스 폴크!) : 우리가 바로 국민이다!”


동독인들의 외침과 마침내 동서독 주민들이 함께 외치게 되었던 저 외침의 말이 목차 중 ‘한반도 군사분계선, 그리고 DMZ’ 부분을 읽는 동안 내 눈동자 근처를 멤 돌았다.

그 날이 내 생전에 오기나 할까.

내친김에 내일은 저 너머 송당리 아름다운 달빛서림에 가서 진즉 입양한 통일기원 술병 술잔 을 데리고 와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이 뻥 뚫린 장벽 틈에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얼싸 안고 춤을 추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살 여행 - 네가 원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박선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염려되는 것이 많고 워낙에 피가 뜨거운 내 스스로를 다스리고 싶어 읽기 시잗했다. 아이가 보는 세상과 엄마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온전히 아이의 세상을 아이의 시선에 맡기게 되는 과정들... 먼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과 지나버린 시간을 다시 만나게 되는 모습들이 '어떤여행'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에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나역시 아이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유명...한 장소를 쇼핑하듯 훅~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시간과 장소를 만나고...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삶의 단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작은 삶 자체. 그것으로 괜찮은 여행이 가고싶었던 것이기에.
나와 딸은 아주 다른 삶을 살겠지만 자유롭고 사랑 넘치고 정직하게 나를 내보일 수 있는 그런 삶을 함께 나눌 수 있을거라고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권 혁명 -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올리비에 브장스노 외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그 나라에 살지 않는 이상 그 나라가 어떻다고 확신하거나 단정지을 수 없다. 하물려 내가 사는 이 나라의 현상 조차도 어떻게 인식해야할지 헷갈리는 때가 많은 판에 타국은 더욱더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몇가지 소회를 바탕으로 논해보자면,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 똘레랑스의 나라, 파리의 택시운전자의 두번째 모국, 자크 랑시에르의 나라, 레미제라블의 나라. 등등. 그 저변에서 나오는 지성의 소리들이 가끔은 어렵기도 하고 괴리감을 주기도 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잠자코 방관하거나 움츠려 숨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존권 혁명. 에서 하는 말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저자 스스로가 잉여이거나 무산계급으로 살고 있지 않고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계급의식이 분명해서 불같이 반응하는 소시민인 나에게 큰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읽어보고 그가 말하는 내용이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삶과 매우 맞닿아있어서 최근 독서에 재미를 붙인 막내이모에게도 선물해드렸다. 우리는 정치를 말할 때 유식함과 현학적인 지적허세를 부리지 않고 말하면 안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곤 하는데, 저자의 문장을 보면 그야말로 그 강박이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감화받는다. 가깝고 일상적인 정치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 돌아가고 머리 돌아가는 어려운 글들의 숲에서 정치적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이 시대의 ㅂ쁜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익한 글이라 생각하면서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처음 집을 짓는다.라는 개념을 가진 건

중학교 가사 시간에 집의 평면도를 그리는 수업에서다.

가사 선생님은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라 하셨고

나는 빨강머리 앤의 다락방이 있는 집을 그렸다.

그리고 20년 후.

지금의 내 나이는 아파트가 가장 편하고 집을 짓기엔 경제력도 여력도 시간도 안되는 나이이다.

그렇지만 차츰차츰 내 시간과 공간이 줄어들수록

내 집. 나의 집. 에 대한 열망과 몽상은 커져간다.

이 책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리고 건축이라는 미학적 컨셉츄어를 뛰어넘어 건축주와 디자이너의 몽상과 마음나눔과 사람 알아감이 문학적으로 만나고 인문학적인 토론을 끌어내서 원래 본의인 집으로 다시 귀결된 과정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도 집을 지으면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살고싶은 집의 물리적 형태보다 내가 살고싶은 삶과 이웃과 맺고싶은 관계에 대해 더 성찰하고 몽상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예쁜 집, 실용적인 집, 멋지게 위용을 자랑하는 집, 등등

많은 집들이 있고 많은 집들이 매스컴등 그 외 매체를 타고 광고된다.

그러나 그 중에 '나의 집'은 없다. 이왕이면 내 삶과 그 공간이 내가 억지로 참아내야하는 요소 없이 내가 온전히 품을 수 있고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읽은 것 중 가장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목소리.
저자의 목소리가 번역되면서 한결 부드러운 어조로 되었을 것을 짐작된다. H오빠 말씀으로는 실제 훨씬 과격한 발언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읽으면서 저자의 강력한 목소리 중. 미국과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국가모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나마도 번역의 과정에서 약간은 부드러운 어조가 된 것인 모양이다.
생각하고 몽상하는 지성이 아닌,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고 정의가 폄훼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인 펜과 입으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저자의 투지를 보면서, 우리의 일부 양심을 편의와 맞바꾼 지식인들 그리고 반대편에서 여러 소송건으로 피폐해진 용기 있는 지성인들과 작가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