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단 하나의 서사

'고양이를 버리다'는 제목으로 사실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무척 궁금했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고한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터라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무척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적 기억속 소소했던 일상들 중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 문장이 술술 써지기 시작했고 저자가 진정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쟁이 한 인간의 아주 평범한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 놓았는지에 대한 냉엄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러 갔을 때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꽤 먼 바닷가까지 고양이를 버리고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아버지와 하루키 보다 더 빨리 고양이는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런 고양이를 어떻게 다시 내다 버릴 수 있었을까. 결국 고양이는 버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대한 대지를 향해 쏟아지는 방대한 수의 빗방울 중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지만 교환가능한 빗방울이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비에는 그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다. 한 방울의 비에도 역사가 있고 그것을 이어가야 하는 한 방울의 비가 가진 책무가 있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