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린의 날개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도서 '기린의 날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공전의 빅히트를 치는, 현재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감성 소설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이라는 『기린의 날개』를 두고,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스스로도 '시리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고 싶다' 고 밝힐 정도로 저자의 특출난 상상력과 뛰어난 얼개, 그리고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치밀한 사건 전개가 저자의 감성과 이성의 절묘한 어우러짐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다 보면 책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한 줄의 소갯글, ' 죽어가는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온몸으로 남긴 마지막 메시지! ' 가 독자들의 심장을 관통하여 진한 감동으로 꽂혀질 것이다.
글을 통해 내가 느낀 히가시노 게이고의 성품은 여전히 차가운 이성과 따스한 감성이 조화로우며 어질고 정의롭다. 사회 구석 구석의 아픔이나 풍요의 이면을 직시하고 그 생각들을 문장으로 불 밝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휴머니스트. 그런 수 많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기린의 날개' 에서도 역시 빛나는 그의 문장들 사이 사이에 촘촘히 매달린 따스함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전달력이 강하고 여운이 짙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의식의 베이스는 진실을 향한 마음이다. 그 인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거짓이나 회피따위를 먼저 배워 정의 위에 이기심을 두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행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이 도서에서는 말하고 있다.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바로 그 출발선상인 니혼바시 다리. 그 다리 중앙에 서 있는 날개 달린 기린의 동상. 여기에서 기린의 날개는 '언젠가는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며'로써 풀이가 된다. 바로 그 기린 동상을 전체 줄거리의 한가운데에 딱 붙들어두고 등장인물들을 곳곳에 배치시킨 뒤 촘촘히 그물망을 쳐서 독자들의 생각들을 한 곳으로 몰아가는 능력이 가히 프로페셔널하다. 언제나 사건의 이면에 의외의 진실을 감추어 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잔잔한 울림과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첫 페이지를 접하게 되면 뒷 얘기가 궁금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마지막 장까지 내달리고 싶게 만드는 자석 같은 상상의 저력을 이 도서, '기린의 날개'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쿄 한복판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그 진실을 가가 형사와 마쓰미야 형사가 탁월한 예지력과 판단력으로 추적해 간다. 그 뒤를 쫓아가는 독자들의 눈과 심경의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즐기는 듯한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의해 책의 2/3 지점을 지나면서 분명 독자들 나름대로 피의자를 유추해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생각과 몸을 휘감는 작은 감전현상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마쓰미야가 경찰계의 선배이자 사촌형인 가가 형사를 향해 '그의 가장 큰 무기는 기가 질릴 정도의 끈기다' 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이 맞다면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신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가가 형사가 아닐까.
내용 중에 인상 깊은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가가 형사에게 도키코 간호사가 진심으로 건네준 말이다.
ㅡ 건강할 때 나눈 약속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죽음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사람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죠. 자존심이나 의지 같은 것을 다 버리고 자신의 마지막 소원과 마주하게 돼요. 그런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예요 ㅡ
진실 앞에서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며 상처를 부풀려가는 아들 유토를 향한 아빠의 마음도 눈에 띈다.
지금도 머리속에서 들려오고 또 보인다. 가난하지만 순수했던 야시마 후유키와 임신 3개월 째인 그의 아내와 뱃속 아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후유키의 결연한 의지 속에서 그의 옆에 벨트로 이어진 생산라인이 보이고,
목재 팰릿을 실은 지게차가 지나갈 때 모터소리와 프레스 소리에 이어서 에어가 세차게 방출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유키가 사랑하는 아내 나카하라 가오리의 마지막 말, ' 추억은 절대 망가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
이처럼 스릴 있고 울림 있는 작품을 마음 한 켠에 쌓는 추억을 많은 독자들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장들이 출렁이지 않고 잔잔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이 끝을 향할수록 일렁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줄거리와 구성의 디테일한 짜임새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저력이다. 더불어 일본 도서 전문 번역가인 김난주님의 일본 문학과 한국 문학의 이해력, 고스란히 숨통을 옮기는 전달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