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대상 - 기호학과 소비문화
아서 아사 버거 지음, 엄창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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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관련된 학문을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서 기호학에 대해 떠오르는 느낌을 말해보자면, 기표와 기의, 자의성 등의 키워드를 뽑을 수 있고 추려낸 단어들을 나열해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그래서 기호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물으면 그런 것도 아닌, 몇 가지 단어와 정의들이 머릿속을 산만하게 떠돌아다니는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책은 기호학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하지는 않지만, 산만한 머릿속을 정리해 줄 정도로는 정연하게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기호학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던 사람이라도 책의 1부를 정독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호학의 창시자 소쉬르와 퍼스의 이론을 시작으로 움베르트 에코, 마샬 맥루한 등 저명한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해석하며 기호학이 탐구하고 있는, ‘언어와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논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렇게 해서 정립된 이론이 보다 실무적인 분야, 마케팅과 홍보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무자들이 기호학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또한 접근하고 있다.

마케팅 실무자들이 기호학을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상품 자체를 아이콘화 시키는 브랜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착의 대상」 2부에서는 브랜드 제품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지를 수십여 가지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어서 보다 현대에 이르러 발생한 현상,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고급 브랜드 선호를 그만두고 고급 제품과 싸구려를 혼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계속해서 바꾸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곧이어 앞서 분석한 브랜드가 아닌, 제품 그 자체에 담긴 사회과학적 의미를 다시 커피, 베이글, 비디오 게임 등 수십여 가지의 예를 들어 해석한다. 이 장에 실린 예는 일정한 규칙 없이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 장의 서두와 마지막 장에서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중요 특징 중 하나인 ‘규칙 없음’을 패러디한 것이라 밝힌다. 어느 정도 정독을 필요로 했던 1부와는 달리, 실례로 가득한 2부는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책 첫머리의 역자의 말처럼, 「애착의 대상」은 대학생·대학원생이나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인문학 독자가 읽기 좋은, 가볍지만 기호학 이론을 두루 접할 수 있는 책이란 인상을 준다. 다만 두세 군데 번역된 어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며, 이론과 예시를 분리해 놓은 책의 구성 방식이 사람에 따라서는 읽기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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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호 2012-0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갑습니다. '애착의 대상' 역자 엄창호입니다. 꼼꼼하고 성실한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첫번역서라 나름 세심하게 보려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2쇄 때 반영하려 하니,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toscanii@klf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