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게도 영훈과 헤어지며 돌아오는 길에 자꾸 윤 대령 생각이 났다. 윤 대령을 생각하면 비정하게 쏘아붙이던 유나가 동시에 생각나고, 자신을 쫓아낸 군과 지숙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아 참담해진다. 그는 왜 군 내부에서만 아는 일을 굳이 떠들고 다녔나. 만약 그게 밝혀져야만 하는 진실이었다면 그가 나서지 않았어도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정근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다. 유나가 죽고 나니 그의 죽음에 대해 더는 간단히 생각해 버릴 수 없었지만 그 문제는 여전히 그러했다. 군과 사회는 다르다. 현실의 법과 군대 법은 다르게 적용된다. 그와 다른 이유로 자신도 옷을 벗게 되었지만 나약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약한 선택, 정근은 자신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유나야, 승무원이라는 태그를 검색하니 전부 야한 사진뿐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철용은 기가 막혀서 웃었다. 유나의 SNS를 전부 뒤져 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승무원 친구의 계정을 찾다 발견한 것이었다. 승무원 친구는 올리는 사진마다 #승무원이라는 태그를 달았는데, 무심코 눌러 보니 속옷 차림의 여자 사진들뿐이었다. 더러 승무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니폼 사진에 태그한 정직한 경우도 있었지만 각종 클럽, 룸살롱 광고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철용은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기내에서 겪은 성희롱을 털어놓던 유나가 생각났다. 그것과 이것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씨발 좆같은 새끼들, 이 좆같은 새끼들. 철용은 뇌까렸다.
주한이 살던 고시원이나 옥탑방에 와 봤을 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욕했다. 곧 아버지가 돈이 없어 좋게 살게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늘 덧붙이곤 했지만. 뉴질랜드에 다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저 돈 한 푼 못 받았고 놀러 다니지도 못했어요. 유나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함께 누운 새벽 아버지는 몇 번을 일어나 앉았다 다시 누웠다를 반복하며 욕을 퍼부었다. 우리 아들 괴롭힌 새끼들 혼내 주러 갈 수도 없고. 아버지가 능력도 없고. 아버지는 욕을 하면서도 주한이 베고 누운 베개를 고쳐 놓아 주었다. 머리통 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 손길을 느낄 때마다 주한의 마음은 번번이 가라앉았다. 아버지 욕을 몇 차례 더 들으면 전부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느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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