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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평점 :
이 책의 서문을 읽었을 때, 다음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지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경우, 보다 지혜로운 쪽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지성의 오른팔이었던 과학이 과거를 청산하고 이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태초부터 두뇌의 중요한 창조물이었던 감성은 거추장스러운 동물적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해방시키는 열쇠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소리 없는 메시지 속에 잠겨 있다. 개인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행복은 사랑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게, 신비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선회하는 은밀한 세계를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언제나 마음의 격랑은 내게 과제였다.
마인드 콘트롤이란 말의 이면엔 이성의 전지전능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성이 마음을 콘트롤하지 못할 때, 나는 쉽게 나를 자책하곤 했다.
이 야생마 같은 마음은 진화상에서 포유류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 이 책의 서술이 얼마나 나를 기쁘게 했는지 모른다.
하하.
'그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어!'
알 수 없는 예감을 존중하는 것,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무작정 따라 보는 것,
이런 말은 어쩌면 미신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과학이라고 불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것처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가 파면 팔 수록 오묘한 것처럼
모든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환상임을 과학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포유류가 뇌에 '변연계'라는 부분을 발달 시킴으로써,
포유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포유류는 '표정'으로 소통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야옹이들의 표정에서 느낀 감정이 야옹이들의 마음임을 이 책을 통해 자신있게 믿기 시작했다.)
또한, 과거의 어느 황제가 언어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들을 의식주만 해결해주고 방치했을 때
(황제는 이러한 아기들이 내뱉는 첫번째 언어가 인류의 근원 언어임을 증명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아기들이 모두 죽어버린다.
이것은 변연계 공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포유류에게 태어난 직후의 변연계 공명(마음을 나누고 따뜻함을 소통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원숭이들의 호르몬 수치로 증명해낸다.
따듯함이 없으면 생존에 필요한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저하 되었고, 결국 아기들은 마음의 죽음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변연계 공명을 통해 일종의 심리적 경향성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심리적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불안정한 아이가 될 수 있고,
사랑을 이해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를 잘 돌보고 사랑해야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여자(엄마)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곤 한다.
아기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처럼 거대한 죄책감은 없다.
모든 인간이 완벽한 사랑을 받고 자랄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통계적으로 증명된 현실이다.
그래서 언젠가 읽은 스캇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어린시절 환경 때문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만 연구해 왔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잘 자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에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신의 은총'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면서, 그 책에서 종교 챕터를 시작한다.
참고로 스캇펙은 기독교신자다.
어쨌든 나는 그의 이런 질문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한 사람들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삼분의 이 쯤 읽었을 때 기대했었다.
어렸을 때 변연계 공명이 부족했던 상처입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이 치유해 줄 수 있음을 증명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만약 나의 기대를 이 책에서 과학적 근거로 증명해준다면
완전한 나의 완소 책이 될 뻔했다.
하지만 역시나 쉬운 길은 없다.
이 책은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매우 쉽지는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ㅜㅜ
그래서 책의 마지막 즈음엔 어렸을 때 아이를 잘 돌보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의사들이 환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는 치료 방법이 유용하다는 현대의학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흥분한 말투로 역설한다. 하하.
그래도 여전히 완소책이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기로 했다.
무언가를 재단하고 분리하는 이성은 존중하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막막하기도 하다.
왜 그런 걸까?
모든지 알면 알 수록
진리는 저너머에 있고, 때때로 모호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