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팰리스
폴 오스터 / 열린책들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폴 오스터를 만난건 스모크라는 영화에서 였다. 아니다 가끔씩 지인들에게 회자되던 이름으로 먼저 만났다. 폴 오스터라는 어감이 왠지 캐비어를 연상하게 해서, 궁금증이 일었는데, 친구가 넘겨준 책 <문 팰리스>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머리에 복잡한 책을 우겨넣고 있을 즈음, 스르륵 손이 <문 팰리스>로 갔다.

굳이 줄거리를 정리 해 보자면 정말 별 얘기가 없다. 한 고아로 자란 청년이 자기를 키워준 삼촌의 죽음으로 방랑을 하다, 사랑을 하다, 얘기치 않게 자신을 다시 찾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여기서 자신을 찾게 된다는 말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 있지만 이자리에서 구체적인 발설을 해 버리면 결국은,다는 아니지만, 소설의 커다란 맥을 쉽게 알게 되어 재미가 없게된다. 즉, 줄거리 자체로만 요약하자면 <문 팰리스>는 정말 별거 아닌 내용이다. 그냥 흔히 발에 치이고 치일 수 있는 고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그것을 예사롭지 않게 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령 '난 오늘 배가 아파서 넘어졌어.'라는 말이 폴 오스터의 손을 거치면 너무 흥미진진해서 계속 재촉하게 되는 그런 것이 탄생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재미' 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환승구에 서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때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계속 아련하게 이어진다. 다른 하나의 심장을 심어준 거 같다.

<문 팰리스>는 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속 깊은 곳에는 신화를 품고 있다. 한 영웅이 집을 떠나 여행을 하고 다시 제자리에 왔을 땐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그 잔혹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을 겪은 그는 이제 나선형 원을 그려서 같은 위치에 돌아왔지만 공간적으로는 전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서 버린 것이다. 즉 '성장'을 한 것이다. 폴 오스터는 '포그'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들에게도 그런 '성장'의 의식이 알게 모르게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인간은 너무도 쉽게 고통을 고통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고통의 이면엔 어쩌면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위로는 아니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들어왔다.
또 다른 하나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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