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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난 종교적 인간을 좋아한다. 종교적 인간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성적으로 따지고 따져도 희망에 어떤 객관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은 날이 오겠지.' '잘 될 꺼야.' 하면서 믿을 뿐이다. 그래서 희망을 믿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분명 종교적 인간인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니, 약 0.0000000000001%만 빼 놓고는 인간이란 종 대부분이 다 '종교적'이 아닐까? 우리가 그렇게 흠모하는 이성이란 것의 역사도 르네상스 이후라고 치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류가 탄생된 그 이전 시대에는 도대체 어떤 사고체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을까?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매우 흥미 있는 책이다. 이성을 좋아하는 현대인이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 즉 현대인은 종교적 인간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인간의 기질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 어느 곳에 신이 있어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는 것이 당연했던 그 고대인들의 세계관이 어느 날 개혁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 왔다. 하지만 수 천년 동안의 종교적 몸짓은 암암리에 우리 행위와 삶 곳곳에 숨쉬고 있다는 것.그것은 '희망을 믿는다'는 말속에서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신들의 세계가 저 멀리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은 좀더 여러 층위로 보인다. 또 인연의 연줄을 타서 환생한다고 상상하면, 집착한 어떤 것을 이젠 좀더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삶은 계속 반복될 것이므로. 종교적 인간의 시공간은 이처럼 다르다.
하지만 이처럼 다르니 종교를 갖지 않는 현대인들이여 종교를 갖고 믿어라 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렇지만 엘리아데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聖現을 믿는다는 것이다. 성스러움이 세상의 곳곳에서 인간에게 읽혀진다는 것. 이 성현이란 것은 파란 하늘의 심원함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신이 있다면 저 땅 속 깊은 곳이 아닌 하늘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하늘의 푸름에 어떤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밤하늘에 무수히 깔린 별들을 좋아한다. 단순한 반짝임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 속에 있는 '믿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종교적 인간의 후예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왜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당시의 종교는 오히려 미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는 또 어떤가? 지나친 이성의 잣대로 매겨진 세상은 오염이 그득하고, 저마다 메마른 입술로 삶을 겨우 꾸려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탄소 화합물의 조합일 뿐이고 이익을 추려낼 자원 보관소일 뿐이다.
문득 <성과 속>은 현대의 비종교적인 인간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모두가 종교인이 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꽃, 파란 하늘, 저녁 노을, 변화 무쌍한 달을 바라보며 느꼈던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들을 쑤욱 들여다보면, 나도 세상을 이성의 잣대로만 바라 본 것이 아니라는 것, 풀 냄새를 맡으며 알게 모르게 신비에 취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지 않을까? 세상은 내가 알 수 없는, 하지만 언뜻 맡을 수 있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내 속에서 믿음을 갖는 인간이 다시 태어났다. 그 인간은 이 지구라는 행성을 좀더 귀중히 여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