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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전집 - 전25권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22명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배움을 통해 착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영혼은 오직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통해서만 선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도스또예프스키를 좋아한다고 했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은 인물마다 한 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한 페이지가 넘는 장광설을 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영화는 시라고 말한다. 도스또의 작품에 나오는 긴 대화를 그대로 소화하기는 아직 쉽지 않은 나이이지만, 도스또의 작품 속의 인물들과 詩와는 언뜻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왜 타르코프스키는 도스또예프스키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날 위 구절을 만났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한 고학생이지만 똑똑하기에 고작 23세 밖에 되지 않은 그 나이에 잡지에 논문을 기고했다. 하지만 그 논문의 내용이란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덕적으로 세상에 무익하고 해만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위대한 위인들이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추앙 받는 것처럼, 죽이는 게 인정될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실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자취가 잡히게 되고, 자수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수를 하면서도 자신은 정당한 살인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기만 할뿐이었다.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 가게된다. 다행히도 충실한 신앙을 가진 소냐가 따라가 수발을 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매우 앓게 되고, 병이 다 나은 연후에 소냐의 손을 진실하게 잡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새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시니컬한 생각을 접고 새 삶을 산다고 선언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배움에서 오지 않았다. 그의 배움에선 오직 살인만 낳았을 뿐이다. 배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속에 직접 다가오는 카타르시스이다. <죄와 벌>은 두꺼운 책이고, 인문들의 대화 사이사이 마다 거창한 얘기가 오고가곤 한다. 하지만 똑똑한 라스꼴리니코프에게 삶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킨 것은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자들과의 토론이 아닌 소냐에 의한 카타르시스와 사랑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대한 영화 시인 타르코프스키와 도스또예프스키의 유사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