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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전집 - 전25권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22명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도스또예프스키를 읽다보면,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인물들은 다양하면서, 다채로워서 그들 하나하나를 파악해 가다보면, 바로 옆에 있는 지인(知人)을 열심히 알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히는 것과 비슷해진다.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다.
<악령>도 또한 그랬다.
내가 도스또예프스키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죄와 벌> 초반부를 읽다, 주인공의 상황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중단한 것과, 지난 겨울방학에 읽었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삶의 고통스러운 측면에 피하지 않는 시선을 나름대로는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인지, 카라마조프를 읽는 내내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설혹 부친살해라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전집에서 첫 번째 내가 든 책이 바로 악령 이였다. 카라마조프는 세 형제로 대변된 삶의 모습에 따라 인간의 죄와 구원, 그리고 종교와 이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면, 악령은 도스또예프스가 살고 있던 당시의 러시아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었다. 그래서 인지 눈으로 읽히거나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얘기는 많이 찾을 수 없었다. 러시아의 역사적 상을 모르는 나로선 추상적일 뿐이었다.
하지만 중권 후반부랑 하권을 읽으면서, 사건이 본격적인 클라이맥스로 진입할 때 흥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20세기는 국가마다의 이념의 차이로 인해 많은 일들이 일어난 시기였다. '붉다'라는 상징하나를 얘기 할 때도 우리는 서로 '쉬쉬-'하며 속삭였다.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것, 그러나 항상 구체적인 잔인한 사건만을 일으키는 그것 때문에 지난 세기 한반도도 결코 편할 수 없었다.
<악령>의 배경을 이루는 러시아의 19세기 사회적 배경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근접한 유럽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온갖 '말'들이 난무했으며, 사람들은 때론 지나치게 혹해 비이성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며, 자신이 표방하는 사상의 환상에 젖어 잘못된 길을 걷기도 했다.
<악령> 속에는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러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의 20세기도 결국은 잘 살아 보자는 욕구에 의해 벌어진 냉전이었다. 목적은 같았으나, 다르게 생각하며 실천한 결과는 결국 피만 흐르는 세월을 낳았을 뿐이다. 악령 속의 사람들도 역시 피만 흘렸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난무하지만, 우린 결코 옳은 절대적인 한 답만을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말'들만을 낳았을 뿐 유토피아는 저 멀리 있다. 그러면 문득 궁금해진다. 인간의 어떤 복잡한 요소가 목적은 같아도 이렇게 다른 모습을 띄게 하며 결국 '유토피아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치열함'을 허무하게 만드는지.
<악령>은 그렇게 되어 가는 인간의 슬픈 모습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그 속에서는 이상(理想)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사람라면, 누구든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인물 하나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이 아무 이상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도 역시, 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두려운 경험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때론 멍청해 보이며, 허황된 꿈만을 먹고사는 듯 하기에. 뭔가 理想을 품는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그러나 아무 것도 품고 있지 않은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임을, '악령'의 세계 속에 사람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 다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연이어지는 것은, 끊임없는 생각과 한숨뿐이다. 정말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