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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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290)

오늘날 주거 문제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숙제와 같다. 삶에 있어 불가결하고, 매일같이 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상적이지만 때로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집을 주제로 한 단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늑함보다는 서늘함을 먼저 느꼈다.

책 속 인물들은 어떤 집단 또는 공간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정규직과 계약직, 임대인과 임차인 등 어떤 잣대로든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거하는 집은 때에 따라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되기도,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227)이 되기도 한다.

집의 서늘한 이면을 느끼고 움츠러들 때쯤, 앞서 존재하는 단편들을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된다. 좁은 집, 불분명한 내일, 염증을 느끼는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미래와 축복을 비는 마음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작가가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관철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순서를 따라 읽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 자체의 일대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곪아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작가. 나는 김혜진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각각의 집을 이루고 있는 배경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임대임차의 사각지대, 부당한 노동환경 등 주인공들이 놓여진 상황을 접하면서 나 역시 다시 한번 사유하게 됐다. 어떻게 집이라는 공간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조명할 수 있는지, 생각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집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가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고, 새삼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불행과 비극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야말로 정말 좋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102)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집이란 공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우리가 진정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앨범에서는 트랙 순서를, 책에서는 배치 순서를 신경 쓰는 편인데 ‘축복을 비는 마음’의 흐름은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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