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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 역정 을유세계문학전집 103
존 번연 지음, 정덕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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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말로만 듣던, 하지만 종교적 이권이 개입된 번역본이 있어 읽기 부담스러웠던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다. 성경 속 가르침이 수많은 주의들과 결탁하여 때가 탄 것처럼, 이 『천로역정』 또한 ‘흔한 목사의 도덕적 설교집’ 수준으로 격하되어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모든 이를 위해 출간했을 번연의 뜻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특정 종교와 종파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이 책이 최근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은 그런 의미에서 참 다행한 소식이었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하는 을유문화사를 믿고 『천로역정』을 읽어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원전의 뜻 자체를 살피고자 하는 마음을 좋게 받아들여 주셔서 『천로역정』 서평단에 선정이 되었고, 그 때문에 이 의미있는 역본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래 내용은 『천로역정』을 읽고 생각이 닿은 부분들을 다소 두서 없이 서술한 내용이다. 혹시나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혹은 이 책에 대해 단순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바는 바람이다.

『천로역정』은 형식적으로 꿈 이야기이다. 1부나 2부 모두 꿈속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꿈은 현재에도 미지의 세계이다. 현실의 반영이라는 입장도, 무의식의 세계가 확장된다는 입장도, 또 욕망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입장도 있다. 또 종교적으로는 꿈이 신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종교에서 꿈은 선지자의 전유물이었다. 선지자들은 꿈을 통해서 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천로역정』이 꿈의 매체를 선택한 것은 – 존 번연이 온 삶을 성경의 사실을 전파하는데 매진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 선지자적인 입장에서 쓴 것, 즉 본인의 사견을 쓴 것이 아니라 신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전파하고자 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역사 속의 많은 선지자들은 또한 해석자이기도 하였다. 신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신이 보여준 무언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번연은 선지자이자 해석자의 입장에서 『천로역정』을 서술하지 않았나 싶다. 내용 속에는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더라도, 그 안의 핵심 메시지는 성경을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나타난 많은 교훈들을 의인화된 인물들을 통해서 ‘신의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잘 읽을 수 없는 이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번연이 해석자적인 선지자의 입장에서 『천로역정』을 쓴 것은 글 전체가 우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크리스천이 가는 순례길에서 나타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나 거인, 용 등은 실제 살아가는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일견 비현실적이기도 한 그러한 요소들을 넣은 것은 단순히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성경 속에 괴물의 형상을 한 Leviathan과 같은 생명체가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존 번연이 살았던 17세기 당시에 발견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번연 자신도 그 자신의 삶 속에서 그러한 괴생명체를 만났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괴생명체보다도 더 끔찍한 형태의 난관들을 그는 많이 만났을 것이다. 12년 간의 투옥 생활, 그리고 종교 개혁으로 인한 혼돈들... 성경이라는 진리를 놓고 사람의 이권 투쟁과, 욕심과, 오만함 등이 뒤섞여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면들을 아마도 그는 많이 목격했으리라고 본다.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신 앞에 더욱 끔찍한 모습을 가진 그 마음들을 볼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내고자 그는 우화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화의 방법을 통해서 그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결국 어떤 사람들이 천상 도시에 가는지, 신이 바라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천로역정』 속 많은 인물들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속성을 대표하고 있다. 그 속성들은 맨 마지막 결말에서 그 운명이 분명하게 갈린다.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들은 천상 도시에서 전령이 와서 데려가고, 그렇지 않은 속성을 가진 이는 순례길 중간에서 패망한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이 신 앞에서 올바른 마음인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모습들이나 행동들이 신의 섭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기회주의와 무지 그리고 약한 마음과 넘어질 뻔 낙담 사이의 간극이다. 순례길의 마지막에 도달하여 천상 도시에 도달한 인물들은 후자들이었다. 기회주의는 돈을 따라갔고, 무지는 자신의 논리로 똘똘 뭉쳐 참된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실제 삶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넉넉한 재산을 가진 재벌과 학술적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약한 마음은 선함-살해라는 거인에게 붙잡혀 있었고, 낙담은 의심이라는 성에 갇혀 있었지만, 담대한 마음과 그 일행들이 그들을 구해준다. 약한 마음과 낙담은 실제 삶 속에서 볼 때 별 볼일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삶에 대해서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인물의 차이는, 곧 신 앞에서는 어떤 자세가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기에 무언가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결국에 중요한 것이다. 그 깊숙한 곳에 작품 속에서 ‘정직함’이라 표현된 믿음이 있던 이들은 결국 그 같은 믿음을 가진 자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이 없던 기회주의와 낙담에게는 그들의 말과 도움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따라가 버렸다.

번연이 이 글을 쓰던 시대부터 다시 새롭게 번역이 되어 나온 책을 읽을 수 있는 지금 2020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비는 많은 종교인들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 있다. 다만, 그 교훈이 실제 그들의 마음에까지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종교의 탈을 쓴 채로 이루어진 범죄와 비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부정적인 것과 연관 짓게 만들어버렸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고 이루어진 범행이 꽤 많고, 이는 실상 그 각 개인이 잘못된 것임에도 성경과 그 속의 가르침마저 부정당하는 처지에 몰리도록 해 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입장에서 『천로역정』이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이 내용은 기독교가, 성경이 실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진정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삶의 자세가 나타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가 신앙인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이들이나, 기독교에 관심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모습 때문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과 그 속에서 쉴새 없이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결국 천상 도시에 도착한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에 대해 주목해 보라. 그렇게 한다면 진정으로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가장 핵심이 무엇인지를 수만의 신도를 거느린 목사들이 하는 말 보다 더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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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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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받는 감각의 반란, 우리가 가지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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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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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의 요모조모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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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절판


거대한 제도가 여러 조각으로 해체되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공동체가 아니라 해체된 제도의 파편 속에 갇혀있다. 노동은 가족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일터는 예전 동네와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 낯선 이방인들이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처럼 되어버렸다. 한곳에 정착하고 살기보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처럼 떠돌이 삶이 글로벌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거대한 제도는 깨졌지만 더 많은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중략)
기실 공동체만이 하나의 문화를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예건대 사람들이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지라도 그 도시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가 공동체와 구성원의 삶을 지탱해주어야 한다는 문제는 공동체의 크기와는 다른 차원이다.
-5-6쪽

부단히 변화하는 유동성이 사람들의 꿈을 깨뜨려버린다. 누구나 스스로 심사숙고하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여러 이론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잘 적응하려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 덧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말기 때문이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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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죽음
기욤 뮈소 지음, 이승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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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만약 바쁜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읽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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