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친구 취했군." 세인트 로버트가 엄숙하게 단언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술이나마약 같은 매개물 때문에 나 자신과 떨어지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결코 술도 마리화나도 환각제도 손에 대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일 테지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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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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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문학은 나에게 친구와 연인과 동지 몇몇을 훔쳐다주었고 이내 빼앗아버렸다. 훔쳐온 물건으로 베푸는 향응이란본래 그런 것이지, 지혜로운 스승은 말씀하실 테지만 나는듣는 둥 마는 둥, 소중한 것을 전부 팔아서 하찮은 것을 마련하는 어리석은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2012년 8월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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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쥐뿔도 모르잖아요."
"네가 아직 충분히 젊다는 건 알지. 나는 늙을 때까지도 알아내지 못했거든."
"뭘 알아내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걸."
더치스는 일어섰다.
"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 알아요. 나한텐 동생이 있다고요.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아요. 핼도, 돌리도, 신도." - P194

"날 그냥 좀 내버려둬."
더치스가 동생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려고 했지만 로빈은손을 피하더니 일어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소녀는 자기도 울어버릴까, 그냥 지나간 나날과 시간에 몸을 맡기고 썩어 흙이 되어버릴까, 살갗이 뼈에서 씻겨 나가고 피가 물로 흘러들게 내버려둘까 잠시 생각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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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야. 하루하루, 일 년 또 일 년, 시간은 이 세계에서 오래된책을 지워 버린단다. 네가 저번에 우리에게 가져다준 필사본 있지?로마 제국 시대에 살았던 학자 아에리아누스가 쓴 거였단다. * 이 방에 있는 우리에게, 바로 이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그 책 속의 문장들은 십이 세기를 견뎌야 했어. 어느 필경사가 그 책을 필사해야 했고, 수십 년이 지나 두 번째 필경사가 첫 번째 사본을 또 한 번 필사했고, 두루마리였던 것을 책으로 다시 묶었고, 두 번째 필경사가 땅에 묻혀 뼈만 남은 후로도 긴 세월이 흐른 뒤에 세 번째 필경사가 나타나서 또 한 번 필사했고, 그러는 내내 그 책은 발굴되었어. 성질고약한 수도원장 한 명, 바지런하지 못한 수사 한 명, 이 땅을 침략한 야만인 한 명, 쓰러져 버린 초 하나, 배고픈 벌레 한 마리만으로도저수 세기의 세월이 날아가 버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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