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의 거짓말이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게 해주는 부분. 자신에게 천성적으로 내재된 우아함과 고귀함을 표현하기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은 톰의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즉 거짓이다, 적어도 톰에게는. 그러므로 자기를 찾갰다는 열망이 거짓말로 나타난다.
그는 절대 미국으로 되돌아가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유럽이라기보다는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혼자 보내는 저녁 때문이었다. 혼자 지도를 보거나 소파에 누워 가이드북을 훑어보는 저녁. 자신의 옷과 디키의 옷을 바라보고, 디키의 반지를 손바닥에 대 보고, 구치에서 구입한 영양 가죽 여행 가방을 손끝으로 쓰다듬는 저녁. 그는 영국산 가죽용 특수 크림으로 여행 가방을 윤기 나도록 닦았는데, 관리를 잘 해서 굳이 닦을 필요는 없었지만 가죽을 보호하기 위해서 닦았다. 그는 자기의 소유물을 좋아했다. 모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지 않을 소수의 것을 좋아했다. 그런 소유물은 자존감을 준다. 단순한 물건이 아닌 품질 그리고 그 품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정을 준다. 소유물을 보면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즐기게 된다. 그렇게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리고 소유물은 그럴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는 존재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다. 엄청나게 큰돈이 드는 게 아니라 약간의 담보가 필요했다. 그는 예전부터 그걸 찾아 왔고, 심지어 마크 프리밍거에게도 그걸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마크 프리밍거 소유물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이끌려 그의 집으로 갔지만 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급 40달러로 자신의 소유물을 사들이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가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아무리 알뜰하게 생활해도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 몇 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디키의 돈을 수중에 넣자 그동안 걸어온 길에 추진력이 생겼다. 그 돈으로 그리스를 여행하고 원하면 에트루리아인의 도자기를 수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최근 로마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그 도자기에 관해 쓴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예술가 협회에 가입할 수도, 그들의 작품을 지원할 수도 있었다. 또한 원하는 만큼 늦은 시간까지 앙드레 말로를 읽을 수 있는 여유도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구입한 말로의 두 권짜리 『예술 심리학』을 사전을 찾아가며 아주 즐겁게 읽고 있었다. 잠시 낮잠을 자고 나서 몇 시든 상관없이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도 노곤하고 졸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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