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권력의 한가운데 서서 자신이 갖고 있는 욕망(고상한 용어로 말하자면 정치철학)을 현실로 이루어 보는 게 모든 정치인들의 꿈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은 가장 훌룡한 교과서입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집권기를 거치면서 최고의 권력을 맛본 푸셰라는 인물의 생애를 통해 권력의 중심부에 설 수 있는 방법뿐만 아니라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요령도 덤으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차가운 마음과 무표정한 얼굴을 지녀야 합니다. 소위 포커페이스라고 하는건데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도록 항상 표정관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흥분은 절대 금물입니다. 다른 사람의 비방과 흑색선전에 흥분해 버리면 공든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허나 이것은 감정적인 흥분이라기보다 계산된 흥분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노회한 정치가들이 어떻게 하나 잘 살펴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고 오로지 권력의 의식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권력의 쾌감은 화려한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내밀한 만족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중에서도 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2인자 철학'으로 대표되는 그 분. 그래서 아직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두려워하나 봅니다. 대중적인 인기는 없지만요.

세째, 인간을 멸시해야 합니다. 개개인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여서는 절대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없습니다. 권력은 속성상 언제든지 피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생명을 깃털같이 가볍게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단, 내 생명은 제외하구요. (문화혁명 때 모택동은 살았잖습니까?)

네째, 돈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돈은 새로운 권력입니다. 돈의 힘 앞에 정의로운 사상도 무릎을 꿇는답니다. 사실 정치와 돈을 궁합이 참 잘 맞는답니다. 금권청치란 말은 사실 동어반복이죠. 정치란 말 속에 이미 돈의 권력(=금권)이란 뜻이 담겨 있으니까요.

다섯째, 언제나 다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배신이죠. 철면피가 되어야만 다수의 편으로 언제든 쉽게 옮겨갈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배신의 가능성을 남겨 두기 위해서는 아무리 친한 사람과도 최소한의 거리는 유지해야 된다는 것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처럼 원칙대로 자기관리를 하면서 차가운 눈으로 권력의 중심을 바라보며 정치판에 뛰어든 푸셰는 프랑스 혁명에서도 온전하게 살아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로베스피에르라는 당대 최고 지도자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최고 측근으로 오래도록 권력을 만끽하였지요. 심지어 나폴레옹이 실각했을 때도 푸셰만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왕정복고의 일등공신이 되었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총선에 앞서 한번쯤 읽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푸셰의 말년은 비밀이랍니다. 뭐 어차피 책을 읽으면 알게 될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