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이다
프랑코 페루치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하나. 인간은 신도 믿지 못하는 신을 믿는다

'과연 신은 있는걸까?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실 종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합니다. 종교의 역사가 바로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장엄한 베드로 성당에 모셔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 상에서부터 우리네 마을 어귀에 있던 투박한 천하대장군까지 모두 위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몇 세대에 걸친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은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신을 만났다고 하는 극소수 사람들의 개인적인 체험을 제외하곤 말이죠. 그래서 다시 한번 신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혹시 신은 단지 우리가 이러이러한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아님 신은 분명 있긴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신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색다른 의심에서부터 이 작품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신은 첫째, 매우 불완전합니다. 불완전성의 대표적인 예가 신도 인간처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지전능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백 퍼센트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 예를 들면 네트워크, 자동차, 심지어 1000피스짜리 퍼즐까지 - 오히려 당연하듯 말이죠. 때로는 신도 세상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신이죠.

둘. 신도 외롭고 인간도 외롭고

참 실망스럽죠. 그럼 인간은 누구를 믿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하나요? 이러한 당연하지만 절박한 질문에 신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야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외톨이다.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난 알지 못한다. 그 대답을 찾고 싶어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든 것 뿐이다.'

셋. 성인이란 신을 만나서 불행해진 사람들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신과 만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모두 진짜 신을 만나고는 실망합니다. 어떻게 신이 저 모양일까. 전지전능은 커녕 되레 우리 인간들의 도움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으니... 그래서 아예 못본척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세네카) 아예 신이 세상을 만들기 직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가길 애쓰거나(부처) 세상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택합니다(예수).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기 전 진짜 신을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취중진담을 한번 들어보죠.

'이걸 아십니까, 아버지? 사람들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숭배해야 한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는 걸 아십니까? 저는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도록 십자가에 저를 못박게 해야 합니다. 얼마든지 그것을 피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설교의 일부나마 구하고 싶으면 그 길을 택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

막연한 공포와 종말의 공기가 감돌던 세기말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면 새 천년에는 믿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이젠 오늘의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여전히 실감나지 않지만 말이죠. 다시 한번 처음의 질문을 떠올립니다. '과연 신은 있는걸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걸까?'

당신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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