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페데리코 안다하시 지음, 유혜경 옮김 / 창작시대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 뭘 해부하자는 거야?

어떻게 보면 참으로 황당한 소재이죠. 여자의 깊은 곳 클리토리스를 발견한 해부학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니... 어찌 보면 지극히 외설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만 실제로 읽어보면 생각보다 점잖습니다. 뭔가 야한 걸 잔뜩 기대하셨다면 다른 책을 찾아 보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진 마시길... 지극히 야하지 않다고 했지 재미없다는 말은 안 했으니까요. <해부학자>는 재미있답니다. 무엇보다도 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중세를 배경으로 탁 까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해부학자의 클리토리스 발견은 참 어처구니 없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성을 한방에 만족시키려는 묘약을 발견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귀부인 이네스를 치료하다 실로 우연치 않게 그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여성의 기쁨과 사랑이 모두 숨겨져 있다고요. 그래서 그곳에 '비너스의 사랑'이란 이름을 붙였답니다.

둘. 참을 수 없는 정액의 무거움

그런데 때가 때인지라 중세를 지배하고 있던 종교계에서는 그의 발견이 악마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견이라고 그를 재판하기에 이릅니다. 자칫 악마 숭배로 몰려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해부학자의 한 마지막 변론... 참 재미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발견은 창조의 업적과 영광을 드러낸 신의 역사라고 강변합니다. 성경의 창조론에 입각하여 남성과 여성의 본질을 '정액'과 '비너스의 사랑'으로 해석합니다. 정액은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형이상학적인데 반해 여성은 그 정액을 받아 육체를 만드는 영혼이 없는 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성에겐 나 자신이라고 주장할만한 영혼이 근본적으로 없다는 논리이지요.

이리하여 해부학자는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아 화형을 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네스에겐 다른 불행이 찾아오게 되지요. 해부학자가 병을 고쳐준 이네스는 병의 근원이 '비너스의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그것을 과감히 도려냅니다. 그리고 '비너스의 사랑'에서 해방되어 여성의 자유로운 영혼과 주체성을 세상에 주장합니다.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처참한 화형이었답니다.

클리토리스에 종교가 필요하고 자유가 필요하고 죽음이 요구되었다니 참 재미있죠? 또 정액은 형이상학적이고 여자는 영혼이 없다는 주장 때문에 해부학자가 죽지 않았다고 하니 여성이라면 발끈할 내용이지죠.

셋. 섹스와 권력이라는 성(性)정치학까지...

결국 이 이야기를 하는군요. 섹스는 권력,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비유라고. 클리토리스를 절개하는 행위로 대표되는 섹스에서 해방된 여자가 죽임을 당하는 건 지배자의 논리를 거부한 피지배자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결론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만일 이 소설을 군사독재 시절에 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작가는 아르헨티나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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