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아내가 병들어 곧 죽을 위기에 놓였다. 다행스럽게도, 한 약국에 아내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을 판매하고 있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 약을 살 수 있는 거액이 없다. 약사는 돈을 받지 않고는 약을 줄 수 없다 한다. 이런 상황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콜버그의 도덕성 인지발달이론의 예문을 축약하면 이러하다.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겠으나, 약국에 잠입하여 약을 훔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당신은 전인습적 도덕성 2단계에 해당한다. 도덕성은 비교적 낮은 수준이나 세인의 비난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 사료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지 않은가.


  이와 흡사하지만 결정적으로 흡사하지 않은 얘기를 꺼내야겠다. 사랑하는 자식이 심장 기형이거나 얼마 살지 못할 중병으로 6개월 이내 심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 법이 허용하는 시간을 준수하자면 자식을 잃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어둠과 악수를 하면 살릴 길이 있다. 당신은, 기꺼이 어둠과 악수할 것인가?


  어린 몸에 맞는 심장을 얻기 위해선 어린 뇌사자가 있어야 한다.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자본의 논리는 이를 가능케 한다. 수요가 많다면 공급을 창출하기 마련. 의도적으로 뇌사자를 만들면 된다. 그렇다. 살아 있는 아이의 심장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눈치 채도 당신은, 어둠과 악수할 수 있는가?


  약이 사고 팔 수 있는 물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어둠과 악수할 수 있는 자는 약을 훔친 자보다 도덕성이 높을 수 없고, 더욱이 비난을 피할 도리 없다. 사람은 사고 팔 수 있는 물품이 아니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갖춘 공통된 시각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가정이다. 실제가 아니다. 만약, 정말 당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다면 손을 내밀지 않을까. 자식의 죽어가는 순간순간을 지켜보며 시간을 버텨낼 자신이 과연 있을까. 현대의학으로는 병명도 알아내지 못한 아들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국가의 독립을 지지했던 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던 스페인 작가(정확하게는 카탈루냐 작가) 마리우스 세라의 심정은 보통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 아이의 희생 앞에 망설이다 돌아서는 경우도 있겠지만 애써 모른 척 하는 경우도 상당수 될 것이다.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등의 유명 일본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 양석일 소설 <어둠의 아이들>을 읽으며 선뜻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아마존의 눈물>에 등장하는 아마존 부족의 부모라면 자식의 죽음 또한 자연의 순응으로 받아들이며 상실을 감내하지 않을까.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무색하게도 세계 곳곳에서 아동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 시에라리온 소년병이 회상하며 집필한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수십만 명 소년병의 고통을 읽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뒤미처 정이현 소설 <너는 모른다>에서 자신의 장기를 빼앗기고 사자가 되어 더욱 작아진 몸으로 침대에 실려 나오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동노동은 그나마 경미한 편에 속한다고 해야 할 정도로 아직도 세계 아동의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아동의 인신매매, 성학대가 자행되고 있는 태국의 어둠을 담아내고 있다.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가 일순 한기로 돌변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불법 장기이식수술을 취재하다, 일본 아이에게 공급되는 심장이 살아 있는 태국 아이의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 신문기자 난부 히로유키와 우연찮게 난부와 엮이게 된 프리랜서 사진작가 요다 히로아키는 사진과 기사로 진실을 폭로하려 시도한다. 아시아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어 방콕까지 오게 된 사회복지사 오토와 케이코는 진실에 경악하지만 이내 사명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구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다만 병원 입구에서 그 아이의 마지막 얼굴을 몰래 찍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현실. 살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는 일본 아이와 죽기 위해 같은 곳에 들어가는 태국 아이는 사진으로 인화되어 들리지 않는 말을 한다. 그 어떤 호소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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