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문학동네 동시집 18
정연철 지음, 이우창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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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년이 필요했으나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평생이 걸렸다고 한다. 어린 아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만약 피카소가 동시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한층 빛나는 유산을 인류에게 남기지 않았을까. 손쉽게 아이의 마음이 될 수 있는 방법, 동시 읊기.


  정연철의 첫 동시집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는 성숙해가는 아이의 눈과 맞닥뜨리게 한다. 소리 내어 웃거나 울지 않도록, 다만 진지하게 화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이끈다. 이야기가 다 끝나면 누군가 앉았던 의자에 궁둥이를 들이밀 때처럼 온기가 베어 나온다. 비록 슬픔에서 비롯된 정서라 해도.


할머니가 밥 주던 고양이

할머니 집 섬돌에서

할머니가 신던 털신 한 짝

홀쭉한 배 밑에 깔고

- ‘할머니와 고양이’ 부분


  할머니 손길에 길들여진 고양이는 당장의 먹이보다 온기를, 냄새를 갈구한다. 자기에게 정을 준 이의 체온과 냄새가 머문 털신을 깔고 배고픔을 참으며 기다린다. 그러나 고양이는 아직 모르고 있다. 할머니가 되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모르는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이렇게 견디다 도둑고양이가 될지도. 가슴 한쪽에서 슬픔이 넘실거리는데 반대쪽에서 기쁨이 밀려온다. 서로를 사랑한 기억은 겨울 하늘을 한층 투명하게 하므로.


  이청준의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자꾸만 아기가 되어가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애기 할머니’와 논일하다 한숨 돌릴 겸 논두렁에 앉을 때마다 죽은 할아버지의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지그시 바라보는 할머니가 인상적인 ‘허수아비’도,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손자의 간절함이 담긴 표제작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나 먹여 살리려면

일 나가야 하는데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부분


  밤낮 폐지를 주워 파는 할머니. 하루치 수입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마저도 없으면 더욱 곤궁해진다는 것을 어린 손자는 뻔히 알고 있다. 손자 아프다고 곁을 떠나지 않는 할머니, 그 손길을 이틀도 아니고 하루만 더 아파서 더 느끼고 싶다는 아이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한없이 안타깝다가도 더없이 기쁘다. 할머니가 지금 눈앞에 있으므로.


  다양한 소재로 수십 편의 동시로 구성된 시집을 아우르는 시 한 편을 꼽는다면 망설임 없이 ‘팔짱’을 선택할 것이다. 이 시는 옆자리에 앉은 이의 어께에 기대어, 체온에 기대어 가는 게 삶이라 말하고 있다. 고인이 된 할머니와 고양이도 서로 기대며 간다. 아기가 되어가는 할머니와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가 서로 기대며 간다. 만날 수 없는 노부부지만 서로 기대며 간다. 죽음에 가까운 할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죽음을 배울 아이가 기대며 간다. 뿐만 아니라 면식 없는 사람들과도 서로 기대며, 간다.


  자기 가슴을 안고 꼈던 팔짱이 풀리고 옆 사람과 팔짱을 낀다.


지하철 타자마자

따로따로 팔짱 끼고 앉는 사람들

쌀쌀한 날씨에

몸까지 바짝 움츠리더니

한 정거장 지나고

두 정거장 지나고……

어느새 옆 사람 따뜻한 몸에

팔짱 스르르 풀며

서로 몸을 기댄다

기대며 간다

- ‘팔짱’ 전문


  어린이가 되고 싶을 때마다 동시를 읽게 될 것 같다. 동시를 읽을 때마다 키가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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