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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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선족 아주마이들 없으면 한국 요식업계는 폭삭 망해버릴 거야.”

(중략)

“요즘 우리나라 젊은 애들이 그런 일을 해야 말이지. 개뿔도 없는 것들이 폼나는 직업들만 찾으니까 별수 있어. 중국제라도 수입해와야지.

- 정이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P. 284)

 

  4센티미터쯤이다. 서울에서 조선족 자치구로 알려진 길림성이나 그 주변까지의 거리는. 무심코 바라본 세계지도는 기어이 눈금자를 들게 했다. 자국이 세계 중심에 위치하도록 제작한다는 세계지도. 길림성이나 대한민국에서 완성된 세계지도의 중심은 별반 차이가 없겠다. 고작 4센티미터 떨어져 있잖은가.

 

  그러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던 시간은 물리적 간극을 무시하고 40센티미터쯤으로 만들었다. 중국 황무지를 개척한 억척스러운 동포로 기억되던 조선족이 한중수교 이후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어도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같은 생활공간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그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물질만능 사고에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우리가 존중과 배려를 던져버리고 맹목적인 측은함 내지는 업신여김으로 그들을 대했기 때문일까. 조선족을 배제한 ‘우리’라는 말에 마음의 거리는 400센티미터쯤으로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내며 한국에서의 돈벌이를 고집하는 조선족이 늘어날수록 야기되는 문제가 있다. 가정의 경제적 안정을 찾고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취업 비자를 신청하게 되지만 바람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부모와 오래 떨어져 지낸 만큼 흔들리는 아이들은 가정파탄이란 태풍으로 뿌리째 뽑힐 위기에 놓인 어린 묘목이 되기 일쑤다. 현재 조선족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현장을 취재한 박영희의 <만주의 아이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간된 르포다.

 

  1920년대 생활고를 해결하거나 사상의 자유를 얻기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만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조선족 사회는 일본에 의한 조선인 개척단 강제 이주로 인구가 증가했다.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놀라운 개척 정신과 근면함으로 한족에게까지 인정받던 조선족이 광복을 맞이하자 귀향 이동으로, 6․25전쟁이 휴전되고 전쟁의 위험이 한결 가라앉자 당시 경제 수준이 높았던 북한 이동으로 감소했다. 이후 조선족 사회는 나름 안정을 찾으며 100여 년 역사를 이어왔으나 한국 바람은 짐작보다 매서웠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을 막을 순 없었다. 자식도 붙잡을 수 없는데 과연 누가 막겠는가. 40만, 수치상으로는 1/5이 떠난 셈이지만 경제활동인구를 감안하면 사회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이 윤택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만 한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음을 자인해야 하는 순간이 현재로 닥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물론 더러는 악착같이 돈 벌고 귀향하여 아파트도 사고 가게도 열지만 태반은 당장의 물질에 집착하게 되고 소비에 익숙해진다. 새로운 의식과 가치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새 사람이 보이고, 새 사람과 새 출발하도록 자신을 부채질하게 된다. 2년짜리 한국방문취업제가 5년으로 연장되면서, 게다가 재신청이 가능해지면서 부모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만주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부록처럼 따라붙은 무관심까지 떠안아야 한다.

 

어느 사회나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이혼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네. 다만 염려가 되는 건 만주에 남은 아이들의 미래가 썩 밝지 못할 거라는 점이네. (P. 270)

 

  만주 아이들은 기숙사를 막장으로 여긴다. 조부모에 의탁하거나 친척집을 전전하던 아이들을 각각의 사정과 여러 상황이 내모는 곳은 바로 기숙사다.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시기를 혼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어리광부릴 상대가 없으므로 서둘러 어른 티를 낸다. 온기를 받으며 조숙한 게 아니므로 자주 삐걱거린다. 이는 청소년 비행 문제로 연결된다. 자식이 중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갈 처지에 놓였어도 달려오는 부모는 소수다. 더 좋은 옷을 해 입히고 더 좋은 학교에 보내,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주려고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서 매달 송금하는 액수로 자녀에 대한 애정의 척도를 가늠하곤 하다가 이마저도 중단되었다면 자식과 본인 중에 하나를 선택한 셈이다. 이쯤 되면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터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의 이혼이라는 통계를 본 적 있다. 엄청난 천재지변도 부모의 이혼보다는 두렵지 않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불안에 시달리는데 불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면서 동시에 몹쓸 땅으로 여기는 아이들은 한국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아빠를 사진 속의 얼굴로 떠올리게 했고, 아빠 품에 안긴 기억을 없애버렸다. 운 좋게 한국 땅에 밟았으나 뭇 아저씨로만 보이는 아빠에게 다가갈 수 없어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다시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할 때야 비로소 낯설어진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했다. 한국으로 떠난 엄마가 시집간다며, 이제는 돌아가지 못한다며 보내온 딸라(달러)로 종이배를 만들어 강에 띄우며 “딸라배야 딸라배야, 나는 네가 싫고 엄마가 좋다야.”라고 외치는 소녀의 간절함이 배어나는 동화 <딸라배>가 탄생되게 했다. 영영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든 것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술 취한 아빠로부터 폭력에 시달리게 만들게도 했다. 조선족 부모의 이혼율이 무섭게 늘어나도록 했다. 한국은.

 

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모두 다 갔다

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미국에 갔다 러시아로 갔다

잘살아 보겠다고 모두 다 갔다 눈물로 헤어져서 모두 다 갔다

산다는 게 뭐이기에 산산이 부서져

그리움에 지쳐 가며 살아야 하나

오붓하게 살아갈 날 언제나 올까 손꼽아 기다린다네 (P. 130)

 

  요즘 조선족들이 곧잘 부른다는 노래 ‘모두 다 갔다’의 선율을 들은 바 없지만 가사만으로도 곰삭은 생채기가 느껴진다. 효범이나 정우가 이 노래를 부른다면 이내 두 개의 물줄기가 볼을 타고 내려갈 것 같다. 효범은 남들처럼 잘살아보겠다고 빚내서 한국으로 떠나더니 소식을 끊은 올케와 빚 다 갚자 아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훌쩍 떠난 동생을 대신해 허 씨가 키우는 조카다.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아 숙사로 보내고 싶으나 차마 그럴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유독 체구가 작은 정우는 일종의 하숙인 합숙소에서 생활하는 아이다. 장애인 엄마를 시설에 보내고 아들을 합숙소에 보내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 아빠는 한국에 갔다. 정우가 바라는 것은 돈일까, 아니면 예전처럼 세 식구가 함께하는 삶일까.

 

  이미 이러한 굴곡을 충분히 겪은 청소년보다 효범, 정우 같은 열 살 전후 아이의 고통이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영군의 안타까운 사연은 숨을 멎게 한다. 한국으로 가려다 북한으로 추방당한 엄마를 영군은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탈북자는 정착금이 지원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행을 고집했으나 민경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허나 설사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더라도 만날 수 없는 확률은 매우 높다. 다른 탈북 여성들처럼 조선족 남성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한국으로 가기 위한 길목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르므로.

 

  조선족 3,4대는 한국을 조국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기회의 땅일 뿐이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그렇다보니 조선족 학교도, 한국어 배우려는 아이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를 잇는 소중한 도구인 언어가 소통되지 않을 먼 훗날, 한민족 정체성 문제로 제기될 심각성은 차치하더라도 아이들 개개인의 바람직한 성장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는 부모의 부재는 간과할 수 없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세계가 부모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 아빠의 언행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지혜가 된다. 모델이 되어주며 한결같은 지지를 아끼지 않으면 아이들은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확고한 내면세계를 구축하고 자기애를 형성하여 하나의 주체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엉뚱한 말일지라도 귀 기울여주는 것이, 와락 한번 안아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는지를 모르는 척하는 조선족 사회의 미래는 두터운 장막으로 가려졌다.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 주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되었을 때를 그려보는 것조차 겁난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 귀향한 이들이 먼저 깨닫는다. 자녀와 멀어진 시간은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메워질 수 없다는 것을. 자식과 부모 사이에 흐르는 강을 다시 좁힐 수는 없다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

- 김한길 수필집 <눈뜨면 없어라> (P. 340)

 

  이를 바꾸어 말하면, 조선족 부모는 자녀 성장에 치명적 결함을 주는 데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린다. 그 틈에서 아이들도 흔들린다. 생생한 인터뷰와 현장감을 더해주는 사진 자료는 가없이 흔들리는 수많은 만주 아이들과 마주하게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담뿍 담긴 음식에는 그 어떤 영양가 풍부한 음식도 주지 못하는 평온이 감춰져 있다. 내면을 살찌우는 음식과 멀어질수록 헛헛함을 게워내는 아이.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집착하게 되어 버린 부모. 그들에게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 그런 까닭에 흔들림은 멈추지 않는다.

 

  사회 현상을 냉철히 바라보는 기록문학은 인간 행동의 오류를 자각케 한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위태로운 200만 조선족 사회의 일면을 보여 주며, 궁극적으로는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 외형만큼 다지지 못한 의식이 불러온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조선족을 같은 동포가 아닌 이국인으로, 그것도 열등한 이국인으로 인식하며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인. 이런 식으로 인격과 행복은 소유한 정도에 비례하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도습한 조선족은 사회의 주춧돌인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중수교 이후 와해되기 시작한 조선족 사회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한국에게도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근거다.

 

  물질에서 행복을 찾으면 끝이 없다. 김난도 교수가 말한 소비의 법칙을 인용하자면 어제보다 더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타인보다 더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오늘의 소소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자족할 줄 아는 현명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 흔들리는 만주 아이들의 울음을 머지않은 한국 사회의 위기를 경보하는 사이렌으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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