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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인형의 집 ㅣ 푸른숲 작은 나무 14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 해 전 타계한 아동문학가 윤사섭의 <목각 인형>부터 말해야겠다.
10페이지 남짓한 단편동화인 <목각인형>을 <광복 60년 동안 가장 빛나는 남북한 명작 동화 3>에서 만났다. 목각 인형을 만들어 파는 가난한 부부에게 늘그막 아들을 얻게 된다. 신의 선물을 고이 간직하고픈 부부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일조차 시키지 않는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우리네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던 부부.
그들에게 불행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모가 하는 목각 만들기가 너무나 해보고 싶었던 아들은 몰래 기계 톱날을 조작하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게 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낳아 곧 북에서 군인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부모는 북으로 끌려간다. 졸지에 전쟁고아가 되어버린 아들, 어쩌면 좋은가.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기억까지 놓아버린다.
야전병원에서 깨어난 아들은 미군의 슈샤인 보이가 되더니 어찌어찌하여 미국으로 입양된다. 오로지 아들을 만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부부, 집을 찾았으나 아들은 온데간데없다. 아들을 그리는 마음이 폭포수 같았기에 이를 조금이나마 달래려고 아들 형상의 목각 인형을 만든다. 물론 왼손 새끼손가락을 만들지 않는다.
이 새끼손가락 없는 인형 때문에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는 아들을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보며 떠올렸고 김향이의 <꿈꾸는 인형의 집>을 읽으면서도 스쳐갔다. 울보 존(해외 입양아)이 패대기치던 꼬마 존(인형)을 뒤에서 안으며 생모를 그리는 장면은 눈시울을 붉혔다.
“양엄마가 싫은 건 아니야. 양엄마가 진짜로 좋아져서 친엄마를 잊어버릴까 봐 겁이 나.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말로 양엄마를 아프게 했어. 나한데 잘해 주지 말라고. 그래서 부탁인데 엄마 곁에 남아 엄마를 위로해 줘. 넌 날 닮았잖아. 엄마가 나 대신 너라도 보면 덜 슬플 것 같아. 난 친엄마를 찾아갈 거야. 넌 여기 남아서 엄마를…… 지켜 줘. 부탁이야. (P.63)
인형(人形)은 사람의 형태를 만든 물건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형은 존재했다고 한다. 맨 처음 인형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어떤 마음으로 인형을 만들게 되었을까?
사실 이런 의문은 부질없다. 한정된 지역에서만의 문화가 아닌 인류가 정착한 모든 곳에서의 공통분모이니까. 아이에게 변함없는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상을 나무로 조각할 수도, 어쩌면 평생 사람 냄새를 갈구하던 한 노파가 만들 수도 있다. 인형은 발명품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으로 만들어낸 애장품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상처 받기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사람의 형태인 이 책의 주인공 벌거숭이 인형도 드러내기 싶지 않은 상처를 받고 인형의 집에 도착했다. 절망뿐인 오늘이 인형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손길로, 주인의 상처를 고스란히 느꼈을 인형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으로 서서히 바뀐다. 앙증맞은 모습으로 재탄생한, 한때 벌거숭이였던 셜리의 모습! 상처받은 아이를 치유해 줄 것 같은 저 웃음!
아이들도 상처를 받는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상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독이 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받아야 빨간약 같은 치유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야 단련된 성장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빨간약 중 하나는 인형이 틀림없다. 또 하나는 인형들의 이야기 <꿈꾸는 인형의 집>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김향이 작가가 인형을 입양(수집)하며 치유하는 과정에서 상상한 <꿈꾸는 인형의 집>은 아이들의 생 앞에 대기중인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