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지의 세계를 좋아한다. 새로운 것은 나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게 된다. 그동안 자기계발서 위주의 독서를 하다가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리스 린도성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나의 심상을 자극 시켰다.
이 여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나에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그리스의 린도성 한가운데서 작중인물들과 함께
있는 내 자신을 발견 했다.
푸른 바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갈매기들이 날고 있다. 갈매기들은 수직으로 하강하다가 곧장 몸을 꺽어 상승한다. 상승 기류를
일으켜 두 날께를 활짝 펴서 푸른 하늘에 찍힌 한 점이 되어 정지하다가 같은 동장을 다시 되풀이 하는 비행을 한다.
갈매기 한 마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의 갈매기들이 모두 곡예비행을 하는 멋진 광경이다. 한참 비행을 하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긴 성벽 앞의 올리브나무에 앉는다. 올리브 나무는 갈매기들이 내려앉자 흰색의 나무로 변해 작은 바람에도
몸 전체를 흔든다. 눈을 뗄수가 없다.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연서다. 연서에게 달려갔다. 연서가 고개를
돌린다.
멈칫 연서 앞에 서자 연서는 놀란 듯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다. 언뜻 멈춰 숨을 고르고 보니 긴 갈색 머리카락 여인은 연서가 아니다.
헬레나 산타나 브이니어스, 비너스다, 이미 수평선에는 해가 가라앉고 있다.(p.22)
코레아 서두를 것은 없어 서두른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저기 포구 끝에 헬리오스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차를 몰고 달리고 한다고,
그리곤 밤에 다시 돌아오지. 그건 하루도 어긋난 적이 없어. 용감한 헬리오스는 돌아오지 않은 적이 없지. 이 로도스에서는 누구라도 다시
돌아오는 거야 전쟁이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헬리오스 대신에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자리하지. 같은 거야. 아르테미스의 사슴은 정복당
하지 않아,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거인 형제가 아르테미스를 납치 하려고 했거든. 아르테미스는 사슴으로 변해 숲으로 달아났어. 거인들이
사슴을 보고 힘차게 창을 날렸지. 사슴은 사라지고 형제들은 자신이 날린 창에 죽었어. 사슴은 포구로 돌아왔지. 로도스에 정복당하지
않는 이야기로 남았다니까. 기억하라고. 코레아, 숲속 어딘가에 있는 여자는 반드시 돌아올거야 (p.64)
늦은 아침으로 부드럽게 구운빵에 치즈와 체리 쨈을 듬뿍 발라 달콤한 맛을 즐기고, 천천히커피를 마신 후 여유롭게 화구들을 챙겼다.
이미 밑그림을 그린 그림들 몇개를 묶어 골목으로 나갔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간까지는 두 시간이 남았다. 햇살이 거리를 달구기
전 올리브나무 그늘을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쾌했다. 여유를 차버린 것은 마리스다. (p.134~135)
주루는 옷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나는 진남루 앞 가지를 부러뜨린 당산나무를 바로 세웠다. 당산나무는 눈이 그득한 가지를 툭툭 털고
새잎을 피웠다. 거무튀튀하던 나무줄기에 햇살이 비취자 은빛으로 반짝이며 살아서 꿈틀거린다. 성벽 낮은 곳에서 바람이 불자 주루가
머리칼을 날리며 당산나무를 감싼다. 당산나무는 활짝 세상을 열고 주루를 맞는다. 주루는 미소를 지으며 당산나무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당산나무를 보았다. 벌거벗은 주루가 당산나무가 되어 내 앞에 섰다. 비로소 당산나무를 그리기 시작
한다. 나뭇잎 하나하나 반짝이는 은빛이 세상을 덮는다. 그것은 린도스 성의 올리브 나무다. 의아한 눈으로 그림을 보았다. 당산나무가
몸을 떨다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주루다. 그날 나는 주루의 겉에서 깊은 잠을 잤다. (p. 298~299)
그리스 로도스는 신들의 속삭임이 현실에서 어우러지는 곳이다. 로도스 동남쪽 끝 린도스 성에 기둥과 일부 벽이 남은 아테네 신전 바닥을
뚫고 사는 올리브나무는 작가가 살고 있는 공주 공산성의 느티나무와 다를게 없다. 느티나무는 금줄을 두른 당산나무의 흔적을 지닌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이야기가 되어 흐를 때 비로소 작가는 눈물로 받아들인다. 작가의
문을 열고 선뜻 들어서는 이들을 사뭇 그리워하는 것은 그들이 강을 건너고, 바다로 나가 고독한 그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여행에서 돌아온 몇 해 동안 공산성을 걸었다. 공산성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보았다. 문득 그림을 글로 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우리의 삶이 놀이의 연속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사들의 이야길 서사로 전한 신의 전령들은 현대에 이르렀어도
그 모습을 버리지 않고 올리브나무의 이야기로 남았다
올리브나무들은 신의 전령들인 바다를 건너는
바람에게 현란한 은빛으로 공명한다.
이 여름 소설의 표현력과 작가의 문체를 만끽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