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욕망을 포기하고 순수함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자 하는 순수에 대한 헌신의 욕망..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고결한 욕망아닐까..

타서 없어지고 싶은 그런 거 말이다.

 

 

 

<줄거리>

도시락 가게 여점원 야스코.

이 도시락 가게에 매일 아침 도시락을 사러 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 이시가미. 야스코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다.

 

야스코는 딸 미사토와 함께 이시가미의 옆집에 산다. 그녀는 5년 전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폭력을 일삼던 전남편 도미가시와 이혼을 했다. 어느 날, 도미가시가 야스코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야스코와 미사토는 우발적으로 도미가시를 죽이게 되고, 이 모녀를 위해 이시가미는 이 살인을 은폐하는 것을 계획하고 주도한다.

 

사건이 일어난 3월 10일. 다음 날, 도미가시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범인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형사 구사나기에게는 가끔 만나 비상한 두뇌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물리학자 '유가와' 라는 친구가 있다. 우연하게도 유가와는 이 사건의 용의자인 이시가미의 대학 동기였다.

 

유가와는 이시가미와 20년만에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이 사건에 깊이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시가미가 만들어 놓은 알리바이. 그것을 푸는 유가와.

 

 

 

그동안 나는 추리소설에 흥미가 없었다. 소위 남는 것도 없고 감동도 감성도 없는데 추리소설같은거 왜 읽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가 추리소설을 추천하는 사람이 주변에 생기면서 부터 점점 한 권씩 한권씩 읽어나가는 참이었다.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추리소설에도 일반 소설처럼 인간의 감정과 가치관과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읽게 된 <용의자 x의 헌신>!!  하루 만에 책 한권을 다 읽은 것은 처음이지 싶다.  초반부부터 이 책은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이 들었다.  살인사건에 대한 책이 이렇게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난 한동안 인간이란 동물의 경이로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도미가시 살인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반전이다.

 

작가가 이 책에 녹여놓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희망과 아름다움은 스토리를 풀어가는 작가의 말투에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사회비판 소설처럼 주인공 입을 통해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거나 자기만의 견해를 풀어놓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위화감을 들게 하지도 않고, 주인공의 감정을 죽 풀어놓아 자세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길지 않은 문장으로 주인공의 행동과 표정을 감정없이 바라본다.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인물들을 샅샅이 해설하지 않고도, 주인공 이시가미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그에게 동화될 수 있었다.  담담하게 인물들을 표현하는 작가의 태도와 이 소설을 읽고 내 가슴 속에 느껴지는 것이 일관되어서 이 작가에게 신뢰가 간다. 어떤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 작품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주 아름답고 감동적인데, 주인공의 입을 빌려 그 작가가 하는 말은 작가의 욕망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되어.. 작품과 작가간에 거리감이 느껴지고 배신감마저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좋은 의미를 담아 소설을 썼다는 데  작가 당신은??'  하고 말이다.

 

이시가미는 수학이라는 학문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길 희망했고, 그런 그에게 수학교사라는 직업을 안겨줄 뿐인 사회와의 불협화음. 외로움과 허무함으로 살아가는 이시가미. 삶을 포기한 그 때 이시가미에게 야스코가 나타났다.

 

일년 전이었다. 이시가미는 로프를 든 채 방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것을 걸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 아무 미련도 없었다. 죽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다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 받침대에 올라가 목을 로프에 거는 데 도어벨이 울렸다.

운명의 벨이었다. 

문을 열자 두 여자가 서 있었다. 모녀 같아 보였다. 이웃에 이사온 사람이었다. (..)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 모녀와 어떤 관계를 가져보자는 욕망은 아예 없었다. 자신이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수학도 똑같다는 것을.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명성 따위는 그 숭고함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만약 다음 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예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할 것이고, 이 세상이란 것은 피곤하고 고통만이 있을 뿐, 희망이나 사랑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 사랑..그런 종류의 것들은 인간이 고통 속에서 노력하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인내하여 보이지 않는 공기 중에 이루어 놓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떻게 해도 자기 자신만을 위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름답다거나 가치가 있다거나, 존엄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돈도 지위도, 사회적인 어떤 가치도 모두 마음 속에서 포기한 채... 어떤 것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다면? 일생을 바치는 그것이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를 떼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가.

 

나는 이런 삶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볼 때 나는 세상이 아름답고 인간은 태어날만한 존재라고 느낀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나는 이시가미를 좋아했나 보다.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거운 것에 일생을 바치며 조용히 사는 것.  경쟁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추구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는 조금 다른 이런 욕망.. 은 아름답다.

 

몸이 구속당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수학문제를 풀 수 있다. 손발이 묶이면 머릿속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안 보여도, 아무 소리가 안 들려도 좋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힘도 머릿속까지는 건드릴 수 없다. 그 공간은 그에게 무한의 낙원이었다. 수학이라는 광맥이 잠들어 있고 그것을 모두 파헤치는 데 인간의 일생은 너무도 짧다.

누구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물론, 논문을 발표하여 평가받고 싶은 욕망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누가 최초에 그 산을 오르느냐가 중요한데, 그것은 본인만이 알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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