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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블 ㅣ Nobless Club 6
노현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데스노블이라는 이름의 이작품은, 어디선 본 것 같은 괴기한 장면들. 하지만 상당히 독특한 소재들이 숨 쉬고 있는 오컬트이자, 현재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이 결합된 여러 색깔이 담긴 공포 스릴러이다. 보는 이마다 공포를 느낄수도, 보는 내내 기이한 장면들과 시종일관 어딘가 불쾌하고 초조하게 하는 고어가 스며든 이야기를 보고 있자고 하면 신경질이 나고 저절로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이 작품을 들여다보자.
1. 데스노블이란.
데스노블의 시작은 우연하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학생 재원에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형이 사온 컴퓨터. 그는 그저 형의 추천에 우연히 데스노블이라는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데스노블의 시작은 데스노블은 현실이고, 우리 주위에 있으며, 죽음과 부활을 꿈꾼다는 기묘한 멘트로 그 서막을 알리는 데스노블. 그것이 재앙의 시작일 줄이야…….
이후에 재원 그자신은 원하지 않는데 신비한 중독성으로 저절로 재원을 붙잡는 데스노블. 이를 보면서 재원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들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일전에 자기에게 불길한 기가 느껴진다는 스님을 찾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스님은 그를 기다리라도 한 듯, 시간이 없다고 하며, 재원이 다른 조연들과 관계를 맺게되는 중요한 매개체역할을 하시면서, 자신의 손녀 천녀 세희, 그리고 그녀의 약혼녀 이었지만, 직관력이라는 신비하면서도 불길함 힘 때문에 그녀를 떠나 현재 자신의 밑에서 스님이 된 유진등을 그에게 엮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데스노블의 원혼인 승예의 저주로 향하게 한다.
또 데스노블의 초반 연재분에서 등장해 현실 속에서 소설속에서 쓰여진데로 '그분을 원한다' 라는 말과 함께 자해와 정신분열적 현상을 일으키고 결국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사차원의 공간으로 사라져버린 동생 연호에게 의문을 품고,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형사 현석. 그는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유리집에서 재원을 우연히 만나면서 같이 이 데스노블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이들은 과연 데스노블이 현실로 이뤄지는 괴현상의 진실을 밝히고, 부활을 꿈꾸는 최승예와 그 뒤의 진정한 목적을 밝히고 막을 수 있을까?
여기에 마지막으로 의문의 소설속의 이야기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최승예와, 그의 아버지 최상덕. 과연 이들과 재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고, 이들의 선조들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이기에 왜 이들의 원혼을 가지고 승예는 현세의 부활을 꿈꾸는 것일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인터넷 소설이라는 소재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거기에 부두교라는 독특한 종교적이면서도 클라인의 거울이라는 4차원적 오컬트적인 소재를 가지고 포장한 이 작품은 섬뜩하리만큼 잔인하고, 독자로 하여금 불편하지만 데스노블의 중독성처럼 점점 다음 장속으로 빨아들인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길수록 과연 데스노블은 누가 쓰는 것이고, 재원의 형 재완은 과연 어떻게 데스노블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고 승예의 저주가 담긴 컴퓨터를 구하게 된 것일까? 라는 커다란 이 의문을 가지고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2.라 실오이분그 리뀌 상세때 바이.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런 샤머니즘 적인 주술적인 언어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저 라 실오이분그 리뀌 상세때 바이부터, 두발리에 바론 샤메디 샤드롱 민피리지아, 이런 신기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불길함을 예고하는 주술적인 언어들은 작품의 음산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 시키고, 작품을 신비스럽고, 최승예의 저주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 저런 주술적인 언어들은 때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남발되는 경향도 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부두교라는 신비스러운 소재를 차용한 이 작품에 더욱 어울리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다만 아프리카와, 부두교라는 소재를 조금 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약간의 부연설명을 덧붙여주었다면 작품을 더 이해하기 쉬웠으리라 생각해본다.
3. 염사 (念寫)
이 작품의 독특한 소재 중 클라인의 병이라는 4차원적인 환상의 도형과, 염사라는 독특한 체계인데. 염사라 함은 생각하는 것을 사진에 투영해서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인식하게 해서 그대로 염사를 건 사람의 뜻대로 하게 되는 일종의 바이러스 체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인터넷이라는 소재와 거기에 소설이라는 소재를 곁들여서 최승예의 염사가 된 사진을 보게 됨으로 최승예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된다. 처음에 염사는 이 글의 리플을 달아 데스노블 작가가 주는 선물을 받거나, 직접적으로 그 편의 소설의 내용의 이들이 주로 염사를 당하지만, 이후에는 그것이 사이버 속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전체로 퍼져나가 그 저주가 점점 널리 퍼져나가게 되고 이야기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재원은 계속 데스노블은 회피하려고 하지만, 점점 재원의 삶속으로 다가오는 데스노블은 유전적인원인도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염사를 소재를 통해 점점 데스노블에게 중독되어가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있다. 물론 인간의 이룩한 사이버라는 새로운 혁명에서의 저주처럼, 이것은 우리의 발전한 문명이 결코 긍정적인 것 만이 아니라는 경고도 담고 있지 않을까?
주로 이야기의 진행은 클라인의 병이라는 소재가 덧 씌워진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지만 실상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한 공포는 그다지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어느 정도 비스 무리한 패턴의 소재들을 이용한 것을 본 적이 있지만, 클라인의 병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더욱 현실감을 높인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4. 과연 이 작품은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가?
데스노블의 가장 큰 테두리는 공포소설이라는 것일 것이다.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 이 소설이 불쾌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조리 덮어줄 수 있는 이 소설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본인은 이 작품에서 크게 캐릭터 성이나 개연성등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가장 먼저 눈여겨 본 것은 과연 내가 공포에 떨고 있나, 어느 정도 나에게 현실감을 가질 수 있을까를 가장 중점적으로 살폈다. 과연 이 작품을 읽고 나서 고양이를 바라보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거울로 둘러싸인 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책을 덮는 순간 거울을 봤을 때 왠지 모를 폭력성에 눈을 썼다는 느낌을 가졌을 정도로, 나조차도 염사에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품의 이야기 전개나 구성에는 어느 정도 아쉬움이 있지만, 시종일관 작품의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와 후반부로 갈수록 밝혀지는 음모의 전말은 충분히 우리에게 서늘함을 선사하리라고 본다.
데스노블이 주는 공포는 단지 고어에서 오는 공포도 아니고, 귀신이나 사이코패스 환자가 같이 소리 소문 없이 습격하는 게 아니다. 서서히 염사가 퍼지고, 승예의 저주로 그들이 환영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는 그 순간부터 나도 어느새 환영과 현실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점점 뿌리 깊은 원혼의 저주와 마주하게 되고, 그 저주의 뿌리를 보게 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서늘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5. 이 작품의 아쉬운 점들과 나의 생각들.
데스노블 작품 자체는 내용 구성 자체는 상당히 노력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승예의 저주로 시작되어, 그것이 진정한 데스노블의 목적과 정체로 커져가는 과정을 보게 되면, 승예의 부활이라는 갈등구조 외에도, 과연 승예의 부활의 진정한 목적은? 이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를 후반부에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지 몇 주 동안 짜낸다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만큼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정체적으로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신 현석이나, 천녀 세희,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이자 지금은 스님인 유진, 마지막으로 주인공 재원까지 그들이 엮이는 과정자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재원의 형 재완에 대한 언급은 초반부냐, 중반부에는 부각되지 않았을까? 분명히 이 소설의 갈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완이 조금 더 부각되어서 사건의 결말에 대한 복선이나, 최승예, 그리고, 재원의 엄마 혜숙과 재원의 아빠 오남진, 마지막으로 승예의 엄마 오승예의 갈등구조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는데, 갑자기 쌩뚱맞게 등장해서 억지로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듯 한 재완의 역할은 막판 집중력을 흩어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마무리를 위해서라면, 재원과 승예와의 관계, 그리고 그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도 천천히 드러나서 종극으로 갈수록 더욱 긴장감을 높여주어야 하는데, 그들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 너무 늦게 들어난 감이 들어서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더구나 승예의 재원에 대한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해서도 조금 더 많이 이야기 되었다면 하면 아쉬움이 있다. 총체적으로 조금 씩 부족한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작위적인 면들이 이 작품의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산만하게 만든 경향도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승예의 부활이라는 첫 번째 사건에서, 그들의 선대에서 벌어진 그 악의 씨앗의 대한 사건이 이어지는 유기적인 층면도 이러한 면에서 아쉬움이 나오는 것 같다.
또한 읽는 내내는 불쾌하고, 불안함을 조성하던 하드코어틱한 장면들도 어느 정도 의미를 유추할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을 부두교나, 또 다른 초자연적인 오컬트적인 면이 조금 더 양념처럼 발라져 있었다면 훨씬 더 공포가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텐데, 위에 언급했던 주술적이고 알 수 없는 주문들, 그리고 작품 내내 불길한 이미지를 조성하던 것들이, 어느새 작품이 현실과 환상을 막 교차하는 순간부터 의미자체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어라는 것도 무조건 잔인한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것이 천천히 의미를 가지고 점점 그 색깔이 선정적이고 잔혹해져야 더욱 불쾌하게 만들고 서늘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전체적으로 이런 잔인하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은 계속되는데, 후반부의 어느정도 인위적인 전개덕분에 이런 부분이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이점은 작가분만이 아니라 출판사의 편집도 조금 아쉬운 부분인게. 이야기가 어느정도 산만해지고 사건과 사건의 연결되는 곳에서의 깔끔한 편집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보는데. 그것이 대체로 승예의 환상을 전개 되면서 조금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이 작품이 이런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갔기에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보는 이에 따라 충분히 서늘함과,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작품 전체에 베어 있는 이 작품은 공포라는 의미에는 충실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것을 원한 독자에겐 대 만족일테니. 이러한 점들을 원한다면, 위에 단점들은 충분히 보완 될수도 있을 것이고, 내 생각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한번쯤 사서 읽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현실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점점 주인공을 향해서 다가온다는 점과,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21세기적 저주를 만들어낸 점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것이다. 약간 이야기의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아쉽지만, 척박한 국내 공포문학에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더 이상 일본식 귀신이 아무데나 튀어나오는 공포물이나, 미국식 고어가 뒤섞인 공포물과는 달리 한국만의 공포소설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