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의 시계 Nobless Club 4
강다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볼테르의 시계, 이성을 찾아 떠나는 환상의 시간여행.




 

 내가 본 노블레스 클럽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에 본 라크리모사는 독특한 환상 미스테리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 볼테르의 시계는 볼테르라는 실존인물의 삶에 후세의 상상을 집어넣어 짜인 독특한 시간 여행이다.

작품의 뒷면에 보면 무명의 역사가 이마기타 비론이라는 역사가의 실종이라는 책에서 모티브를 삼았다고 하는데, 그 책을 구하길이 없어서 사실 확인은 할 수 없지만, 18세기, 로마시대, 8세기 프랑크 왕국 시대 중세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으리라 예상되는 부분들이 눈에 보인다. 이제 작품을 들여다보자.



 

1. 볼테르와 캐릭터.


 

 처음 볼테르라는 인물을 들었을 때는 세계사 책에 나오는 사회계약설의 토대를 마련하고, 18세기 프랑스의 지성인으로만 알았지만 그가 이렇게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인물로 이 작품에서 살아 숨 쉬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시종일관 여유로우면서도 정의감에 타오르고, 어떤 순간에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그의 캐릭터성은 이 작품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고, 그가 같이 시간 여행을 하는 인물인 쉴리 공작과 티격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점은 아주 이 작품의 큰 플러스 요소 작용한다. 라크리모사에서는 캐릭터 성보다는 사건의 속도감에 초점을 맞췄다만, 볼테르의 시계는 그보다는 조금은 느린 템포로 캐릭터들과 사건이 천천히 휘감아서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할 때 어느새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작품에 시간 여행의 모티브를 제공하고, 그와 세기를 걸쳐 얽혀있는 오귀스트라는 인물인데, 이 인물의 등장이나, 그가 사건의 엮이는 점은 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작품 전체적으로 SF적인 층면에서 보면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좀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는 건 아니라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인물을 통해서 엔딩을 도출해가는 과정에서 작품 내에 가장 큰 악역치고는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이나, 그 당시 특권의식에 찬 귀족들을 제대로 대변하지는 못했다는 점도 아쉽다. 캐릭터가 조금더 입체적 이였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볼테르와 시간을 넘는 에밀리 드 브르퇴유양은 막상 이야기가 종결되는 시점에서 약간 밋밋한 처리가 아니었나 싶다. 시간 여행의 종결지에서 볼테르와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매끄러웠다면 어땠을까? 후기 같은 형식으로 처리되기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2. 절대 이성과 인간 관습.


 

 절대 이성과 인간의 관습이라는 소재는 이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중요한 소재이다. 일단은 귀족이라는 특권의식에 거부감을 품는 볼테르와 이에 순응을 권고하는 쉴리 공작간의 이야기는 단지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지금도 보수와 진보, 젊은 층과 기성세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념의 논쟁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흥미로웠던 저 논쟁은 과연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건 보편적으로 이성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 환경에 순응한 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것을 파헤치려고 한다. 이 문제는 단지 서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동양철학에서도 성신설과 백지설로 부딪히기도 하는 참으로 흥미로운 소재인지라 보는 내내 이를 대변하는 볼테르와, 쉴리공작의 논쟁은 상당히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이 논쟁에 대해서 급히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운을 남기며 독자에게 한번쯤 생각할 만 여유를 주고, 그 답은 결국은 볼테르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시계라는 소재를 통해 환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사용한 것과, 작가가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작이라는 미지의 마지막 마법사와의 관계를 묶어주는 이 소재는 참으로 좋은 선택 이였다고 생각한다. 아이작의 존재도 그저 막 지어낸 설정은 아닌 것 같으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3.보는 내내 흥미로웠던 작품의 정체성


 

 보는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과연 이성을 찾아 떠나는 철학여행인지, 아니면 시간을 넘는 SF인지, 지금도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지만 참으로 독특하고 작품을 읽는 내내 또 다른 흥밋거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위에 논쟁대로 작품 내내 저러한 논쟁과, 그것을 파헤치려는 그들의 여정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지만, 로마시대때부터 18세기까지 계속 이어지는 인물간의 관계와 이야기의 관계는 어찌 보면 환상문학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철학적인 이야기, 수많은 인간들이 꿈꿔왔던 시간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SF가 혼재된 이 작품은 양산형 찍어내기와 끊임없는 도용과 표절로 물들어가고 800원짜리 저질 양산소로 변해가는 장르시장에 참으로 아깝기도 한 작품이고, 이러한 괜찮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신예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희망적인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 여담으로 이 작품이 판매고가 그리 좋지 않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철학과 시간이라는 소재로 이정도로 잘 버무린 작품이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하면서 본 것은 시간을 걸쳐서 내려오던 그들의 관계를 보면서, 몇차례 보았던, 크로스 채널이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같은 일본 SF물이 떠올라서 A세계 B세계 이런 식으로 시간과, 그 이동을 한 세계와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따져가면서 작품을 접근해서 이 작품에서의 18세기 볼테르의 현실과 그가 떠나는 시간 여행 세계의 작품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말이 좀 꼬였는데 그냥 이리저리 분석을 해서 보시면 될 듯하다.)


 

 이미 수많은 작품들에서 다뤄온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지만,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매력과 느낌은 확연히 틀리다.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인 ‘로스트 스페이스’에 경우 인류의 미래와 우주라는 SF소재를 이용해 과학적이고 할리우드 다운 블록버스터를 보여주는 반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라이트노벨로 출간된 타임리프같은 작품에선 충분히 만화나, 애니로 재 생산될 수 있는 친숙한 로맨스라는 소재를 곁들여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고, 볼테르의 시계에서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인간의 절대 이성이라는 논제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고, 아이작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소재로 쓰였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허나 아쉬웠던 것은 조금 더 시간여행에 대한 마무리가 매끄럽게 마무리 되었으면 하고, 약간은 부실한 과학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가 되었다면 훨씬 더 풍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이 작품에서의 그 가치만으로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여운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약간은 독특하게 한 큰 에피소드에 여러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모여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어찌 보면 꽁트들이 모여서 큰 이야기를 이룬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여행 중에는 호흡이 긴 부분도 있어서 꽁트가 모여서 이야기를 이룬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듯하다.) 그리 흔하지 않은 이야기 스타일이였달까, 이것에 대한 평가는 읽는 독자마자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총체적인 느낌.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일차적으로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이 모두 충족되는 작품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만, 작품 내내 끊이지 않는 위트, 그리고 짜임새 있는 구성. 작가는 모티브는 그 실종이라는 책에서 얻었다고 했지만, 로마, 프랑크 시대. 중세 시대를 한국이라는 동양적 정서에서 나온 작품치고 큰 유럽에 관한 지식이 없는 내게, 충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 한 고증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고, 전혀 공부가 되지 않은 요즘 양산형 중세 히로익 작품들에 비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테르의 생애까지 충분한 공부를 통해서 시간여행에 불어넣고 있다는 점은 별을 열 개를 줘도 모자랄 판이다.


 

 저번에 읽었던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의 살인 시리즈처럼 충분한 실존인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을 곁들여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일이고, 작품을 보는 내내 흐뭇함이 절로 베어 나오게 한다. 단테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를 역사적인 소재가 도입된 ‘장미의 이름’도 수도사 같지 않는 수도자인 괴짜같은 윌리엄이 없었다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았을까? 지금 전혀 소재와 캐릭터에 대한 공부가 거의 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작품을 찍어대는 이들은 이 작품이나 외국의 중세나, 고대를 다룬 작품들을 보며 충분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장르의 틈바구니 틈에서 라크리모사에 이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브랜드인 노블레스에도 상당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 몇몇 출판사나, 미스테리 추리를 포함한 쪽에서 국내의 척박한 장르의 터전에도 불구하고 계속 질을 높이려는 시도들이 보이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 나오고 일반 대중들에게 계속 어필이 되어서 10000원의 값어치를 하게 된 그 순간부터 기성세대들의 판타지 무협에 대한 편견도 조금이나마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다빈치 코드에게는 사회적인 이슈를 가져다준 책으로 보고, 우리의 드래곤 라자는 공부하는 애들이 읽어선 안될 판타지 책이 되어 있던 우리의 수많은 기성세대들에게 이러한 정말로 충분히 살만한 값어치의 브랜드들은 계속 그들에게도 어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 처녀작이라고 밝힌 ‘강다임’이라는 작가분도 앞으로 계속 이런 괜찮은 철학과 SF가 접목된 하이브리드틱한 작품을 내주기를 바란다.


 

 노블레스에게도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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