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에쿠니 가오리 장편소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라는 예쁜 제목을 되새겨보니 재미있는 제목이다.  포옹이라는 게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는 포옹일텐데 소금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이 책의 가족들처럼 평범해보지만 사실 특별한 숨겨진 사연이 상징화된 제목 같다.

'에쿠니 가오리'는 에세이, 동화, 소설까지 다양한 글쓰기를 하시는 분이라는데 이번에 출간 책은  내가 기다리던 소설이었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은 에쿠니 가오리가 일본 여성 월간지 《슈프르(SPUR)》에 4년 넘게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쇼와 시대(1912-1920년도)에 지어진 아름답고 고즈넉한 고택에 3대가 모여사는 가족이 있다.  러시아인 할머니, 외삼촌, 이모,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넷까지 매우 단란해 보이는 풍경이다.   더구나, 그 사는 곳이 예전에 만들어진 대저택이니 마치 그림 같은 가족들로 보인다.  그런데, 양파껍질처럼 한 꺼풀 한 꺼플 들어가 보니 이 가족들이 진짜 심상치 않다.    많은 등장인물과 은근히 복잡한 이 가족의 사연과 더불어 이야기의 화자도 수시로 바뀐다.   시대도 1960년대서부터 2000년대까지 들쑥 날쑥 진행되지만 적응이 되니깐 읽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아이 넷중에 두명은 부모가 같고, 나머지 둘은 친부, 친모가 따로 있다.   와... 제법 쎈 의외의 소재로 당황했지만, 감성적이고 세련된 문체 때문인지 이들의 목소리에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고 두꺼운 두께에 비해서 진도도 빨리 넘어갔다.    이 집의 아이들 네 명 중에서 리쿠코와 장남 고이치만 한마디로 부모가 같은 친형제이다.   이렇게 복잡한 가족사에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찰리 채플린의 이런 격언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이 가족이 딱 그랬다.   하지만, 어느 누구든지 사생활을 파고들어가 보면 말 못 할 비밀과 상처들도 숨겨져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은 특히 엄마와 그 형제, 아빠도 역시 바극적인 인생이고 엔딩도 역시 비극으로 끝맺는다.   그렇지만 작가의 필력 때문인지 몰라도 비극적인 느낌보다는 매우 담담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게 독특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저세상으로 가거나 배우자가 외도는 본인에게는 큰 고통일 것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처럼 사는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할 과제가 이닐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일탈이나 행동들이 참 어이가 없을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반감이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태연스럽게 웃을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아마도 작가분이 걸려서 그들 인생의 한 면만 보여주시고 숨긴 건 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당시엔 속이 뒤틀리고 힘들었을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나마 제일 반듯한 사람은 '리코쿠의 이모인 '유리'였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제일 불행한 인생이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일 멀쩡해보이는 사람이 제일 불행하다니.   소재 자체는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꽤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사람으로서 소중한 것

사람으로서 소중한 것 -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리는 청춘을 위한 인격론 강의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9월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것'이라는 제목을 보고 왠지 뜨끔합니다.   근래에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깊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것은 일단 '물질적'인 그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저를 속물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열해질수 밖에 없고, 경쟁의 핵심에는 '물질적인' 가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제목만 봐도 참 나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저자인 와타네 가즈코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잡게 되었고, 수녀님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이신 이해인수녀님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책이 너무 무난할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에세이인듯한 그 책을 깊게 들여다보질 못 했고, 이번에 신간이 출간되었다길래 역시 은은한 에세이 정도를 예상했습니다. 

이 책은 와타나베 가즈코님이 1965년부터 시작되어서 지금까지도 노틀담 세이신 여자대학교에서 진행중인 인격론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잔잔한 감동 실화와 수필을 상상했다면 이 책은 그보다 더 강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찌 보면 애매한 '인격론'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에 방대하고 꼼꼼하기에 무난하게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 편입니다.

이 책은 강의 중간에 문학, 영화, 연극, 성격책까지 많은 예술 콘텐츠에 걸친 장르를 예시로 보여주고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빅터 플랭클린의 '미지막 수용소'라는 작품도 많이 언급됩니다.    자기 사진의 모습을 지키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부족하고 흔들리고 늘 갈등하고 욕망의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고 낮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왜 몰랄을까...싶기도하고요.   수녀님의 인격론을 읽다 보니 이대로 실천하면 뭔가 근사한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죠.    초반에는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후반부로 갈수록 내가 단단해지면서도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매우 중요한 사안입디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실천이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이런 책을 자주 접하다 보면 나란 사람이 좀 변하지 않을까요...  몸에 좋은 쓴 약을 삼키는 기분이었지만 소중한 독서시간이였습니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동유럽 인문학 여행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 깊이 있는 동유럽 여행을 위한 지식 가이드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누구나 한 번쯤은 유럽일주를 꿈꾸었을 것이다.   나 역시 당장 여행하고 싶은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유럽'이라고 말할 것이다.  막연하게 동경하고 가보고 싶은 유럽이지만 실상 이 유럽의 지리, 환경에 별반 지식이 없었다.

이 책은 유럽중에서도 서로 근접한 동유럽도시인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 헝가리의 네 도시의 수도인 프라하, 비엔나, 브라티 슬라바, 부다페스트를 열차나 지하철로 연계하면서 각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다.   저자가 건축가여서 그런지 건축, 거리의 동상 사진과 조각품이 많이 실려있다.

얼마전에 스페인에 대한 책을 읽어봐서도 느꼈지만 유럽 쪽의 건축물은 참 고딕스럽고 우아하다.   도심의 한복판에 고딕풍의 성 같은 건물이 있으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현대의 건축물과 더불어 깊은 매력을 풍기고 있다.   ​ 또한, 건축물뿐 아니라 동유럽의 역사, 음악,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한수 배울수 있다.    이렇게 많은 정보와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것을 보니, 30년 동안 동유럽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놀랍지도 않다.     동유럽의 많은 국가를 자기집 드나들듯이 다닐 수 있으니 부럽기 그지없고...

이 책을 읽기전에 어느정도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지식을 먼저 알고 시작하면 더 유익할 것 같다.   아니면 지도를 펴 놓고 저자가 설명하는 코스를 따라가봐도 좋을것이고, 그냥 책만 읽기보다는 사전에 이런 곳이구나... 알고 시작하면 좋겠다. 

동유럽국가의 도시이름은 나에게는 사실상 어렵지만 각 골목의 다양성과 예술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을 접하는 게 참 즐거웠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일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지배를 받고 많은 우여곡절과 암욱한 역사를 거쳐왔다.  그런 환경에서도 문화, 예술에 대한 관리 보전을 알뜰하게 잘 한 편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환경 보전이 바로 국가력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한번에 읽어가기보다는 (사실 지명이 어려워도 잘 읽힌다. ) 두고두고 읽어보면 좋겠다.   요즘 뜨고 있는 인문학적 지식도 같이 겸비할 수 있고, 앞으로 동유럽 국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저자의 30년의 유럽 생활의 내공이 그대로 응축된 책이다.

고트 마운틴-데이비드 밴

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밴은 (1966년~)'헤밍웨이'와 '코맥 맥카시'에 비견되면서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소설가라고 한다.   이 분 작품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전작인 [자살의 전설]을 읽고서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이다.   자살의 전설은 중편과 단편이 실린 단편집으로 거의 참혹한 죽음과 성장통이 주된 스토리였다.   작가님의 아버님께서는 이혼 후 자살을 하셨고 그때 작가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승화시키셨고, 작가의 말대로 가장 암울했던 개인사가 선물이자 기적이 된 것이다.

전작인 자살의 전설은 대체로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문체나 산이나 바다에 자연에 동화되는 개인의  마음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고트 마운틴의 무대 역시 자연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인간의 안식처라 할 있는 산이 배경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산에서 사냥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다.    남자 몇 명의 등장인물과 사춘기 소년인 '나'가 화자이고 줄거리도 단순한 편에 속한다.   초반에 읽으면서 왠지 '천지창조'의 그림이 연상이 되었는데 역시 읽다 보니 성경, 하나님, 카인과 아벨에 대한 비유가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 (산)에서 '금단(禁斷)의 열매'인 사과를 따 먹고 그 벌로 낙원에서 쫓겨나고 고통을 느끼게 되는 벌을 받는다.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이 책의 무대인 산이 마치 그 에덴동산 같기도 하고, 소년이 시시각각 겪는 사건들이 간접적으로 고통스러워 보여서 마치 속죄양처럼 보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타인의 죽음을 보게 되고 그 죽음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잔인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피해갈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타인의 죽음은 마치 남의 이야기같기에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인다.   더구나 주인공 소년의 나이인 11살에는 죽음은 정말로 먼 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보일진데, 그 나이에 죽음의 단상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소년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물론, 주인공 소년의 비참한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고 용감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받아들인다.  그런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켜 놓은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고통이고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쓰리고 아픈 일일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수 밖에 없을것이다.    평탄치 못한 환경속에서 꿋꿋하게 대처하는 소년을 보니 인생읜 단면을 보는듯하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소년이 무척 안쓰럽기도 했다.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는 문체나 사건 속에서 녹아내려지는 자연의 묘사가 압권이다.    솔직히, 쉬운 소설은 아니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 여라가지 느낌과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작가분이 다음편엔 어떤 이야기가 들고 오실지 궁금하다.   차기작을 읽고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산 자와 죽은 자-넬레 노이하우스

산 자와 죽은 자 ㅣ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산 자와 죽은 자]라는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살았다는 의미는 심장이 뛰고 숨을 쉬면서 내 의지대로 행동할 때를 의미할것이다.   하지만, 살아도 살아있는지 논란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뇌사자나 식물인간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여형사 피아와 보덴슈타인 반장이 콤비가 되어서 타우누스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타우누스 시리즈의 7권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백설공주에게 죽음 ] 이후로 두 번째로 읽어보았다.   백설공주에게 ...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 역시 많은 등장인물과 더불어  꽤 치밀하면서도 많은 사연들이 숨어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마다 허투로 넘어가지 않고 한 사람 한사람을 마치 엄마의 마음으로 살뜰하게 챙기셨다.    피아와 보덴슈타인 외에 동료형사나 프로파일러등과 더불어  순차적으로 발생되는 사건의 피해자들의 가족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독일식 이름이라서 어렵기고 외우기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이 책을 읽으면서 우연히 '타우누스 시리즈 가이드북'을 손에 넣은지라 가이드북에 소개되는 등장인물을을 몇번이고 되짚어 보면서 읽으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부담이 꽤 클 것이다.   이 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 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리고 공을 들였는지 헤아려질 정도로 많은 조연들까지 촘촘하게 의미를 부여해놓았다.   또한 뇌사자와 장기기증이라는 꽤 심오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뇌는 죽어있지만 심장을 뛰고 있기에 국내에서도 뇌사 판정의 기준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꽤 민감한 사안이다.   나도 역시 서평으로도 함부로 말하다가 실수할까봐 걱정이 된다. 또한, 이 책 속의 살인마의 수법도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차별화가 되는데 총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추리소설 하면 왠지 범인이 칼이나 연장을 이용할 것 같은 선입견이 깊은 나에게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원작자인 넬레 노이하우스가 이 작품으로 과연 업그레이드되었는지가 궁금했는데 다루는 주제도 그렇고 분명 기존보다 더 퀄리티가 높다면 높다.  하지만, 무게감을 조금만 더 줄여도 좋았을것 같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결국은 여러 갈래의 강물이 하나의 바다로 모여지고 늘 그렇듯이 배후에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감추어져 있었다.

 남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그럴싸하게 포장된 인생의 그 누군가가 알고 보니 두 얼굴의 이기주의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더불어 꽤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