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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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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하면서 나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단언을 즐기는 사람들도 당사자의 면전에서는 잘 그러지 못합니다. 어쩌면 비평은 함부로말하지 않기 위해 늘 작품을 앞에 세워두는 글쓰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 없이는 말할 수 없다는 이런 제약이 저는 가끔 축복 같습니다. (…)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이 말은, 제가실제로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래서 계속 비평을 열심히 쓰겠다는 뜻입니다." - P10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 P27

영화는 엠마의 전시회장을 나와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델의 뒷모습을 보여주며끝난다. 이 결말이 뜻하는 바가 절망인지 희망인지를 묻는다면 나는희망이라고 말할 것이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김연수의 단편소설 「벚꽃 새해」(『사월의 미, 칠월의솔』, 문학동네, 2013)의 전언이기도 하다.) 아델의 첫사랑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절망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델의 고통은 그녀를 달리 살게 할 것이고 더 사랑하게 할 것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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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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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말이다. 사전에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혹은 그 기간‘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뜻 말고도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특별한 뜻이 적혀 있다. 이런 예문과 함께. "인생이 불쌍해서 살려준다."인생은 ‘살려줘야 할 정도로‘ 불쌍한 것이다. 왜 그런가.
체호프는 입센의 작품을 보며 ‘인생은 저렇지 않아‘라고 잘라말한 적이 있다. 입센의 세계는 아무리 복잡한 비밀도 결국은 풀리면서 끝나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 ‘문학적인‘ 세계라는 것. 체호프는 다르다, 라고 비평가 제임스 우드는 말한다. 체호프는 수수께끼로 시작할 뿐만 아니라 수수께끼로 끝낸다고. 인생의 질문들 앞에서 ‘난 모른다‘라고 중얼거릴 따름이라고.
그러니까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아, 인생이여‘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어로 ‘아이고,인생아‘라고 한다. 불쌍해서,죽일수도 없을만큼 불쌍해서. - P7

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래서 내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죽지도 못했어.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 P26

슬라보예 지젝은 『죽은 신을 위하여』에서 신의 일방적인 발언을 이렇게 냉소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신의 말 때문에의 침묵, 욥의 묵묵부답이 더욱 잘 들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평결한다. "신은 정의롭지도 불의하지도않다. 다만 무능할 뿐이다." - P43

아이가 보는 세계는 경이롭다. 세계 그 자체가 본래 경이롭다기보다는 세계를 경이롭게 볼 줄 아는 아이의 눈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시인은 바로 그 문장을 적는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비록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움이지만 삶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훗날 아이가 자라면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에 출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아이에게 주어진 삶은 아름답기만 해야 마땅하다는 것. - P69

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 P90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 P112

하기는 바다로 가라앉는 학생들이 방치되는장면을 함께 지켜봐놓고도 그것을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도 다른 원인으로 한번 더 죽어야 하는 고초를 겪는 곳이 우리가 사는 여기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아직 미처 다 죽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는 형국이니 그 죽음에 합당한 애도는 엄두를 내기도 어렵다. - P128

이런 말을 덧붙이자.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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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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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머니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악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을 경쟁적인용어, 즉 어떤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뜻으로만 받아들였다.
나는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항상 미흡하게 전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어머니는 예전과 다름없는 나의 어머니인 것이다. 바ᄅᆢ 이와 같은 사실이 나는 몹시도 두렵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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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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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남은 볼일이 있다면, 그걸 끝내기로 하자.
우리는 그 같은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평생을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막상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담대함과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해 그런 말을 못 하기 십상이다. 그런 종류의 침착함은 교육이나 연습의 산물이 아니다. 그 자질을 타고났든가 아니든가, 둘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타고나지 않는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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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내게 김사량의 탈출이 지극히 문학적으로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사량은 국경을 넘어 알 수 없는 미래의 공간으로 탈출했다.
그 새로운 미래는 그가 한번도 가지지 못했던 언어로 구성됐다. 작가라면 이게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알 것이다. 작가가 목숨을 건다는 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 P182

"이 세상에서 별빛이 가장 많은 곳이 어딘지 아세요?"
물론 나는 모른다. 아는 게 많지 않다.
"페루의 띠띠까까 호수에 가면, 섬이 있어요. 그 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어요. 너무 환해서 잠을 못 잤어요."
별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나는 언제나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그때는그 말이 더 좋았다. 이 세상에서. 멋진 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바로 이 세상이니까. 그리고 이 세상의 끝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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