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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그 후'라는 제목은 어찌보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것 같고 어찌보면 더없이 평범한 제목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제목을 두가지의 연유에서 붙였다고 한다. 한가지는 '산시로'라는 작품의 주인공에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는 이 책의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 그 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산시로'라는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이 책은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이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끝이 나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주인공인 다이스케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가 않다.
다이스케는 거의 대부분의 일에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다. 물론 다이스케자신은 이렇게 행동하는데 다분히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이스케는 무직, 쉽게 말하자면 실업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단한 재력가이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어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다이스케는 탐미주의자이다. 직업을 가지는것보다 꽃, 향기, 색채등을 즐기는것에 더욱 우선순위를 두고 자신이 게으름을 피는 것을 정당화한다. 아버지와 형은 이런 다이스케를 한심하게 여긴다. 나이는 차 가는데 결혼할 생각도 없고 직업을 가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이런 형과 아버지를 오히려 더 한심하게 여긴다. 아버지는 '성실, 근면'을 삶의 모토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비리의 온상이다. 회사의 경영을 위해 온갖 비리들을 서슴지 않는 아버지가 다이스케의 눈에는 위선자로 보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이스케는 아버지가 주선하는 신붓감들을 모두 거부한다. 하지만 그렇게 도덕적인것을 고귀하게 여겼던 다이스케는 결국 친구의 아내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삶이 가장 고귀한 삶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무시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다이스케의 생각도 이해 할 수는 있지만 다이스케 자신이 살아가는데 쓰이는 모든 물질적인 부분은 모두 자신이 그렇게 무시하고 경멸하는 아버지가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이다. 만약 정말 아버지의 비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아버지가 번 돈도 쓰면 안되는게 아닐까? 그리고 다이스케가 무시하는 사람들은 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이스케의 삶도 나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영원히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 다이스케의 삶은 이 삶을 지탱해 줄 누군가가 있을때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는 뭔가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다.
다이스케의 삶은 친구인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를 자신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모순으로 치닫는다. 사실 다이스케는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당당하기 그지없다. 여느 사람들처럼 죄책감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유는 히라오카가 미치요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유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설사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 그의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부터는 이 전의 다이스케가 그랬던것 만큼 당당하지는 못하다. 자신도 모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이스케의 이후 삶이 궁금하지 않은 이유는 다이스케의 무기력한 삶의 태도때문이다. 다이스케와 미치요는 원래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던 사이였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그 기회를 놓쳐 버렸고 너무 늦어버린 후에 와서 그 기회를 되찾으려 한다. 게다가 다이스케는 혼자 자립하지도 못하고 그럴 생각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주선한 신붓감을 거절하자 아버지가 다이스케에게 "나도 더이상 노를 돌봐주지 않을 테니까."라고 한다. 다이스케는 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더이상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직업을 구하러 방황한다. 하지만 이 결심은 형수가 경제적으로 조금 보태줌으로써 미뤄진다.
다이스케의 삶을 보면 무엇인가 부족하다. 삶의 열정도 부족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도 부족하다. 이런 점들때문에 나는 다이스케의 '그 후'가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