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기자 맞아?
오동명 글, 사진 / 새움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옛날 책이다. 무려 15년 전, 그러니까 무려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이다. 굳이 그 시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대통령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책이 정권과 언론 사이의 관계 속에서, 언뜻 갈등인 듯 보이지만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한 족벌 신문의 악다구니였던 홍석현 사장 탈세 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 속에서 끊임 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쓰고 나온 중앙일보 출신 한 사진기자의 의견집이자 속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10년 정도 몸담았던 중앙일보의 모순과 언론사의 관행이라 불리는 나쁜 작태들을 작심하고 낱낱이 적은 책이라지만, 솔직히 정독을 하진 않았다. 언론의 족벌구조를 해체하고 사회의 공기로서 거듭나게 만드는 시민단체, 일선 기자 중심의 언론 개혁 운동이 시급하다. 지당한 말씀이고, 지당한만큼 지켜지지 않았던 말씀이다(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안티조선 운동이었고, 이제 그 운동이 벌어지던 시점과 다른 언론 환경에 놓여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문제제기가 당장의 실천을 불러일으키는 실효성 있는 제안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문제제기나 해법이 크게 참신한 것도 아니고, 일선 기자였던 당시 현장에 대한 고발은 이제 15년이 지난 지금 낡은 감이 있다. 저자의 고발은 그냥 묻혔고, 묻힌 상태로 낡아버려 새삼스레 다시 꺼내기에도 애매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달라진 풍토. 달라진 분위기. 그리고 그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라져버린 논란과 그 당사자들. 저자의 글은 딱히 파란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세월 앞에 스러져버렸다.

 

 그런 저자의 글을 굳이 다시 꺼내 읽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글보단 저자의 삶이,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이 궁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홍세화 씨가 '생각의 좌표'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흰색을 가장 싫어하고 거북해 하는 건 검정이 아니라 침묵하는 애매한 회색들이라고. 그 흰색이 이만하면 괜찮다 타협하는 회색들의 기만을 존재 자체만으로도 드러내기 때문에 흰색을 회색들한테서 가장 먼저 배타당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독자의 항의를 장난전화처럼 피해버리고 서로 낄낄대는 기자들 앞에서 굳이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니냐고' 질문하고,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길 바라는 유력인사들 앞에서 또 굳이 입바른 말을 하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싸움을 데스크와 만든다. 그 '굳이'라는 말. 아마 그 말조차 회색의 말일지도 모른다. 선배가 나가면 누가 우리 대신 데스크와 싸우면서 추켜올리는 듯 하면서 '어떤 또라이'에게 부담스런 일을 다 시키려들었던 저자의 숱한 선후배들이 했을 말들 말이다. 저자는 흰색으로 남고 싶어서 퇴사를 택했다.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말이다. 이럴 때 텍스트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저자의 삶이란 맥락에서 새로이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 새로운 의미가 된다.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흰색으로 외로웠던 날들이 어땠느냐고. 그걸 아직 지키고 있느냐고. 15년이 흐른 지금. 동료들이 부장이 되고 잘하면 국장으로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당신의 삶은 문득, 낡아버리지 않았느냐고. 부정을 바라며 던지는 질문들을 이렇게 되뇌어본다. 결국 나는 부탁한다. 끝끝내 지켜달라고. 아직 당신의 흰색이 찬란하기를 바란다고. 천천히 당신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다른 흰색들이 생겨나기를, 부디,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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