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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10호 1 - 침공의 선봉
김민수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작품을 다 읽은 후 크게 한 번 숨을 내쉬었다. 5권이라는 권수를 뒤로 하고 책을 다 읽고난 뒤의 그 후련함, 아쉬움들이 들어있는 그런 한 숨이었다. 완독 후의 느낌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리뷰를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연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김민수의 '장백산 10호', 국내 최초 국지전의 특수전 시리즈인 '붉은 새벽'시리즈의 최초작품 '붉은 새벽'을 시작한 이래로 8년만에 5권을 기점으로 완결되었다. '붉은 새벽'의 전체 시리즈는 '붉은 새벽', '에코소대', '505특전대' 이후 4번째 작품 '장백산 10호'가 있다. 그 중에서 '붉은 새벽', '에코소대'는 강습대대 특임대(특수임무중대)에 속한 인물을 소재로 씌어 졌다면 '505특전대'는 특전사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백산 10호'는 시리즈의 여타작품과는 대척점인 북한군 정찰대의 시점에서 작성되었다.
최초로 김민수의 '장백산 10호'가 출간된다고 했을 때는 일종의 첩보 소설로만 생각되었다. 아무래도 예전에 중국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첩보원 '황하1호'의 이미지가 있어서 '장백산 10호'역시 일종의 국지전에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긴급한 첩보상황을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소설은 진행되었다. 군대를 제대한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했겠지만 결코 하나가 되기 어려운, 그리고 결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바로 남한과 북한의 군인이다. 그리고 그런 허를 찌른 작품이 바로 '장백산 10호'이다.
우리가 국가대항의 운동경기를 텔레비젼을 통해서 시청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나 애국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에 자각하게 되는 정체성 때문이다. 그래서 '장백산 10호'는 불편한 소설이다. 항상 적으로만 생각했던 북한군의 입장으로서 사물을 관찰하게되며 더욱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더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장백산 10호'는 확실히 밀리터리 소설이다. 정말로 액션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읽는 순간순간에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낄 것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긴박감을 만끽하게 된다.
북한의 최정예 정찰대의 주인공 '정선우'의 시점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남한에 침투하고 어떤 형태의 작전을 행하는지를 여실히, 그리고 낯낯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듯이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한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죽여야 하며, 따르고 싶지 않은 명령이지만,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진짜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전쟁, 이념 그리고 사람이다.
비록 김민수의 작품 '장백산 10호'에서는 쉴세 없는 액션이 진행되고, 정신없이 주인공의 감정이 책에 나열되어 더욱 책속에 몰입하게 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의 분단현실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관계, 그리고 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명령과 자신의 충성의 대상을 향한 행위들이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이념과 대치되며, 결국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신념을 배신했을 때 느끼는 마지막 감정들이 책을 완독했을 때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을 쉬게된다.
마치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등장하는 '환상의 계절'과 같이 환상적인 순간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운명의 파도로 휩쓸려가는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에게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고 만다.
특히 소설이 최종을 향해 진행되면 될수록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후의 작전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막막함은 4권의 제목처럼 완전히 '고립무원의 땅'에 서있는 것 같은 허허벌판에 외로이 서있는 주인공의 허탈감이 느껴졌다. 그동안 전쟁소설 혹은 전쟁영화에서 느꼈던 액션의 시원함이 아니라 폭력의 종착점에서 느끼는 끝간데 모를 외로움과 파멸감 뿐이었다.
전쟁소설 혹은 전쟁영화에서는 사실성을 통해서 반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장백산 10호'의 최종장에서 전쟁의 황폐함을 느꼈다.
김민수는 전쟁의 결과, 파국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세밀한 상황묘사를 통해서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담담한 서술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들 보다 더욱 원숙하게 그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도 더욱 대담하게 표현한다. 김민수의 작가적 원숙도가 더욱 성장하고 있음이 '장백산 10호'라는 작품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비록 익숙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그래서 더욱 낯설지만, 그렇기에 소설은 불편하게 전쟁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백산 10호'에서도 아쉬운 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권말에 소개되는 '외전'들이다. 또 다른 부분에서 진행되는 전쟁의 다른 양상들을 설명한다. 본편의 내용과 겹쳐지는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며 진행되는 외전들은 또다른 북한군의 작전들을 소개하며 흥미로운 사항들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이런 외전들이 본편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내용들을 담았기에 본편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장백산 10호'를 읽다가 보면은 감정의 곡선이 최고점을 치달리고 있을즘 해서 본편이 끝나고 외전의 시작이 진행되기 때문에 잔뜩흥분했던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게 식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작품에서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편집 구성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에는 편집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쉽게 지나쳐서는 안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밀리터리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남성독자이며 군대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하여 어느정도 군사 용어에 익숙하겠지만 특히 설명이 필요한 용어들은 각주들을 통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책 뒷편에 보면 특별히 설명히 필요한 익숙하지 않은 무기들의 제원이 설명되고 있지만 무기의 제원외에도 설명이 필요한 다양한 군사적 지식들은 작가의 설명을 통해서 군사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 갈수 있을 것이며 장르 소설의 저변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아쉬운점에도 불구하고 '장백산 10호'는 분명히 대단한 작품이다. 숨쉴틈 없는 액션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작가의 의도가 장황한 서술없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한 때 '데프콘'이라는 밀리터리 작품이 히트하면서 여러 밀리터리 소설이 출간이 되었지만 대부분이 '데프콘'과 비슷한 구성으로 나오면서 한 껏 달아오른 장르소설의 열기를 금새 식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와중에도 작가 김민수는 그와는 별개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국내문학계에서 비인기인 장르소설을 특유의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김민수는 현재 보다 미래가 더욱 촉망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가 김민수는 분명히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발표하게지만 그의 작품 '장백산 10호'는 분명히 그의 여러 작품세계에서도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더욱 큰 시야로 보면 국내 장르문학에서의 위치에서 역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