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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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발상의 발랄함도 충격이었지만, 평소 스스로 Gender에 대한 민감성이 있다고 자부하던 터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당연하게 쓰고 있는 형용사 한마디 한마디가 politically incorrect하였다니..

딸 많은 집에서 자라 여학교를 다닌 덕분에 자라면서 여자라서 받는 차별을 느끼지는 못했었고(어쩌면 주어진 전제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그리 달라지진 않았다. 나의 여성성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하지만 결혼을 하니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남편이 유독 마초거나 가부장제의 화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간 거리가 먼 펀임에도 흑백이 분명한 내가 받아들이기엔 이건 아니잖아 싶은 게 참 많았었다. 그 시절 이 책은 통쾌하고 박하향처럼 알싸한 느낌이었다.


10년전쯤에 비해 가사나 육아의 부담이 줄어들었고 20년쯤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차별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차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50대가 되어 다시 읽는 느낌은 이 책이 참으로 정교하게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일상 속에 놓인 섬세한 차별에 대해 “그게 과연 당연한 모습일까? 그렇다면 이건 어때?” 라고 다른 모든 장치들은 그대로 둔 채 남녀만 바꿔놓고서는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다. 뒤바뀐 일상을 살아야하는 그림을 보고서 이제는 통쾌하지 않다. 이 또한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일 뿐..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하자면 양성평등의 수혜자는 여성이 아니라 양성 모두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지금까지 여성이 많은 제약을 받았고 불이익한 대우를 받아왔기에 양성평등의 가치가 대두되었다면 그러한 제약과 불이익을 제거하여 모두 각자의 생김새대로 쓰임새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고 이럴 때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하는 믿음, 

난 여성주의라기 보다는 인간주의인 것 같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말이다. 이런 면에서 내가 아줌마인 것이 참 좋다. 나를 여성주의라고 보는 남성들에게, 나를 반 여성주의라고 보는 여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난 내 딸들이 부당하게 대접받고 제약을 받는 게 싫은 만큼 내 아들이 그러는 것도 싫다고..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다들 귀한 후손들이니 제 잘난 맛 느끼고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아마 10년 전에 남성=남편이었다면 이제는 남성=아들로 감정이입해서 읽나보다. 한 여자가 아내에서 어머니로 자라면서, 어린 자녀를 양육하던 가정내 성차별의 최고점을 지났기에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느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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