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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 평화는 힘이 세다 ㅣ 세계 어린이와 함께 배우는 시민 학교 1
로라 자페, 로르 생마크 지음, 레지 팔러 외 그림, 장석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각들이 많아지고 하는 수 없이 철(!)이 들게 되는 것 같다. 정확히 이 책인지는 모르지만, 몇년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 프랑스에는 어린이를 위한 시민교육교재가 있는데, 아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꼭 접해보고 싶었었다.
하여간 자신이 무언가를 참 잘한다고 믿고서 상당히 '잘난 척'하는 큰 아이는 말그대로 '맞벌이형'아이였다. 그저 사달라는 준비물 사주고 가끔 숙제 했는지 확인하면서 수시로 아부성 칭찬과 껴안음 등으로 어찌어찌 에미노릇을 하면서도 엄마로서 기본점수는 된다고 착각할 수 있었는데..
덩치는 크고 자존심은 세면서 좀 여린 성격의 둘째는 등교거부아까지는 아니지만, 8시 20분이 지났는데도 갑자기 책이라도 보고 학교에 가야겠다며 전격적으로 책을 펴는 등 아침에 최대한 늑장을 부리기 일쑤고, 한 학기에 한두번 정도는 9시를 넘겼다는 이유로 지각대신 무단결석을 택하고,(늑장부리는 녀석을 기다릴 수 없어 먼저 출근하므로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 알게 됨) 친구들이 뚱뚱하다고 놀린다면서 전학가면 안되냐는 등등 간단치 않은 문제들로 난감한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지난 1년여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저어질 정도.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으면서 무척 평온하고 행복하게 보낸 녀석은 저녁무렵이면 '숙제없음'에 새로운 행복감을 맛보며 일기장엔 '늦어서 학교 안가고 집에서 TV보기'란 제목아래 그 날 일을 빼꼼이 적어 놓고 다음날 아침엔 태평스럽게 꾸벅 절하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여느때처럼 학교에 간다.
하여간 둘째 말이 친구들이 맨날 놀리고 때리고 한다면서 눈물바람을 할 때 막상 엄마로서 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많은 말들이 머리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10살도 안된 아이에게 지침으로 주기에는 마땅찮았다. 엄마 역시 자신에게 닥친 부당함을 합리적으로 표현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만이 명치끝에 아릿하게 느껴질 뿐..
우리사회는 '폭력'에 무척 관대하다. 깁스를 할 정도라든가 피를 줄줄 흘리는 상황쯤 되어야 가해를 인정하지, 모욕이나 상처를 주는 말쯤은 '인격수양'을 통해 너그러이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털어버려야 한다. '사노라면' 그런 일쯤은 언제든지 일어나는 일이고 그 때마다 어떻게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냐고..
그러다보니 자라면서 분명히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나 적개심을 조절하기보다는 그 존재를 부정하고 그 결과 그 불꽃은 점점 커지는 악순환의 경험이 조금은 부끄럽게, 조금은 억울하게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있다.
이 책은 어린이용 도서가 아니다. 우선 어른들부터 (달달달 외워서라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응용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해야 할 책이다. 특히 애들도 함께 보는 뉴스시간에 멱살잡이와 맞고함으로 화면을 가득채우는 여의도 높은 분들도 바쁘시겠지만 함께 공부하시면 좋겠다. 진정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부당함과 분노를 정당하게 표현하고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데 어찌 어른 아이가 다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