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항재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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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다 결국 남편의 이름을 그대로 아들에게 준다. "아마도 이 아이의 운명인가봐요."(p.11) 결국 자신만의 이름을 갖지 못한 아카키는 운명 때문인지 이름 때문인지, 그는 정체성 없는 만년 9급 관리로 한 생을 산다. 무미건조한 아카키의 인생에서 열정이 폭발하게 된 것은 외투 때문이었다. 실내복으로나 입어야할 만큼 낡아빠진 외투를 버리고 새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 아카키는 영혼까지 끌어올려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는 앞으로 생길 외투를 늘 마음속에 그리며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했다. 이때부터 그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고,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인생의 반려가 그와 함께 인생길을 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이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p.33)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날, 국의 사람들은 그에게 아는 체를 했고, 한 관리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는다. 거리를 걷는 그의 눈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에게 외투는 러시아의 추위를 막아주는 옷 한벌이 아니었다. 그의 초라한 내면을 가리고 그를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것,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것, 그를 더 완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아카키의 외투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날 밤 아카키는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긴다. 아카키는 외투를 찾기 위해 경찰서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다른 이의 조언을 듣고 고관을 찾아간다. 그들에게 아카키의 사정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심한 질책까지 당한 후 집에 돌아온 아카키는 죽음에 이른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는 페테르부르크는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p.60) 그래도 작가는 아카키에게 마지막 일격을 준비해 주었다. 아카키는 유령이 되어 나타나 직위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 가다가 마침내, 그에게 모멸감을 준 고관의 외투마저 빼앗아간다. 그 후로 고관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이 작품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선한 인간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카키는 주변 사람들에게 괄시를 당한다. 남들과 더불어 아카키를 함부로 대하려던 한 젊은이가 문득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그후로도 계속 '이마가 벗어진 작달막한 관리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날 내러벼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말하는 모습'(p.14)을 떠올리며 '그후 평생 동안 인간에게 비인간적인 면이 얼마나 많은지, 세련되고 교양 있는 사교계 사람들에게조차,(중략) 잔인하고 무례한 면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 를 보면서 여러 번 몸서리를 쳤다.'(p.15) 이 뿐만이 아니다. 아카키가 외투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국의 사람들은 그를 돕기 위해 모금을 한다. 그를 내친 고관은 연민을 느끼며 아카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를 도우려고 한다. 사후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이런 선량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 아카키를 함부로 대한 이유는 그들이 집단에 있기 때문이었고, 그가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의식 때문이었다. 외투 한 벌로 그 집단에 들어서고, 사회적 위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아카키는 너무 순진했다. 사람들이 집단에서 선량한 인간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는 초현실적으로만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사회 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러시아의 겨울밤 같은 이 냉혹한 세상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선량함이라는 외투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이 2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고전이 된 이유는 인간사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여러 모로 읽힐 수 있는 함의성 덕분일 것이다. 고골은 이 단편을 2년에 걸쳐 다듬어서 만들어 냈다고 한다. 너무 빨리 읽고, 너무 빨리 후기를 남기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이 작품의 10분의 1도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아 아쉽다. 러시아어로 읽는다면 문장에서 또 다른 깊이를 얻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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