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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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네온사인을 연상시키는 책 표지는 금방이라도 음악을 들려줄 것 같은 기대감을 품게 한다.
웃기기 위해 연재한 글들의 모음이라는 박상의 이 음악에세이는 그가 가진 문체와 개성을 고스란히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상에서, 또는 여행지에서 의도적으로 듣고, 우연히 듣게 된 음악들로 그의 삶이 함축되어 있는 이 에세이는 내게도 인생의 순간순간을 나타낼 음악이 있는지 묻는 듯 하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음악이 흐르는 일상을 공유한 그의 이야기를 함께했다. 





그 시절이 내 생애 단 하나의 핵심적인 순간으로 아름다웠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느낌이었다. 가슴의 압통이 점점 커졌다. 지나간 시간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는 가슴이 아팠다. 베로나의 '푸르게 빛나던' 가을 햇살이 그것을 쿡 찔러버린 것이었다. 

- 026 p 

 

 



음악을 듣는 그 순간, 어떠한 것이든 현상과 환경은 존재한다. 그것이 음악을 듣는 귀와 연계되고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 음악이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가 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장하고 있는 음악 한 곡, 한 곡에는 내 이생의 순간들이 담겨있다.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나의 감정, 나를 둘러싼 환경 등을 느끼고, 다른 곡에서는 또 다른 과거를 만난다. 가볍게 넘겨보는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나 자신은 내 인생의 축약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기에 이 음악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또 비밀스러운 그것이었다. 타인이 듣는 음악들을 공유받는다는 것은 타인의 인생을 공유받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의 수많은 음악들을 통해 또 그가 써내려왔던 글을 통해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를 주변의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팝송, 국내음악, 펑크, 아리아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그의 다채로운 경험과 인생을 말해주는 듯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CD를 활자로 전달받은 이 책은 음악인들에게 적지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큼 환상적인 경험이 또 있을런지. 가볍지만 유쾌한 그의 문체는 긴장없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의 트랙들을 모두 읽은 뒤, 역시나 드는 생각은 나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적어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러했듯, 내게도 음악은 언제나 삶의 일부였고, 순간순간을 장식하는 배경이었다. 과연 음악으로 표현될 나의 인생은 어떤 선율일지. 가을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소중히 간직해온 인생을 한 곡씩 마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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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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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뿐이었다. 삶이 당신에게 "그래서"라고 말했을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운명이라 불렀다. 그래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로 불리게 되는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로 익숙한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다룬 "시대의 소음"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저자 줄리언 반스의 신작이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쇼스타코비치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작곡가에 대한 순수한 기대감에서였고, 그 순수함이 무지함이었음을 인식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표현은 또한 음악을 들을 줄 모르는 이들이 그의 교향곡에서 자기네가 듣고 싶은 것을 듣게 해주었다. 그들은 종결부의 끽끽거리는 아이러니를, 승리의 조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승리 그 자체만을, 소비에트 음악, 소비에트 음악학, 스탈린 체제의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을 향한 충성스러운 지지만을 들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짧게 들은 그의 음악들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해왔던 나는, 그에게 얼마나 큰 모독을 준 것일까.


'누구나 다 아는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수식어때문에, 그의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광활하고 의미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그동안 음악을, 작품을 대했던 태도였다. 이 짧은 문단이 내게 안긴 충격의 여파는 상당했다. 나는 온전히 작품을 이해해본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그렇다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범위에서 완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특히나, 쇼스타코비치의 시대적 상황을 처음 접하고, 작품들의 탄생배경을, 탄생비화를 알게 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한 신념이 깨져버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이 뒤틀려있는가, 무엇이 숨겨져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안목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것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 중 하나였다. 거기 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댜리는 것은 용감한 행동일까 비겁한 행동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닌- 그저 합리적인 행동인가? 그는 답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독재시절, 수많은 걸림돌에 발끝을 채이고 또 채인다. 자유의지가 작품을 차별화시키는 힘인 예술가에게 일직선적인 찬양과 사상은 독으로 작용했다. 권력층의 몸짓 하나에 목이 잘리는 작곡가들을 스쳐지나가면서,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그가 이리도 자조적이고 자기혐오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마치 일본의 문학가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은 현 시대의 맹목적인 흐름을 쫓는 데 급급한 이들에게도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죽음 너머에는? 그는 침묵의 잔을 들어 건배를 하고 싶었다. '이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기를 바라며!' 죽음이 모피를 두른 굴욕과 함께 핢으로부터 안식처럼 온다 해도, 상황이 덜 복잡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3부로 구성된 책은 그가 겪은 가장 굴욕적으로 살아남은 순간들의 이야기들이다. 줄리언 반스의 예측할 수 없는 서술들의 나열은 운명이라는 시국에 흔들리는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한다.
살아남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그의 삶이 남긴 궤적은 단순한 걸작들의 향연이 아니다. 시대의 소음에 짓눌린 예술가, 사건들의 무참함은 쇼스타코비치는 물론,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다시 돌아보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 대해 자문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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