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설교, 신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다
김도인 지음 / 목양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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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인의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복사본을 놓게 한다. 원본으로 설교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단순히 설교 잘하는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설교를 작성할 수 있는 실력과 자세를 일러준다. 다만 문제는 읽음에서 끝나지 않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실행이 답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독서, 창조적 성경묵상법, 설교 구성, 논증 방법, 설교 글쓰기, 설교 퇴고, 설교 연습, 자기 관리

 

이상의 내용은 다분히 인문학적이다. 인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다르다. 인문학이 인간의 보편을 말한다면 인간적은 신의 간섭을 배제한 이기적인 것이다.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인간적인 책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설교하기를 권면한다. 이유는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본질은 고수하고 방법은 허용하라는 말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남도(南道)엔 비가 내린다. 이 비는 가을장마이기에 단비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단비다. 나를 키우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식었던 가슴에 불을 질러준 저자 김도인 목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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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설교, 신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다
김도인 지음 / 목양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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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숨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단비다.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나에게 단비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안 하고 싶을만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단순히 설교 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설교자의 실력과 자세를 갖추게 하는 책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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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글쓰기다 아트 설교 시리즈 1
김도인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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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글쓰기다> 이 책의 제목은, 제목이자 외침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책이나 한 문장은 남는다. “설교자는 글쓰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것도 좋은 글, 세상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글을 쓰라고 말한다. 그것이 목회의 성공이라면 성공이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장 제대로 감당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설교는 글쓰기다>는 총 5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의 구분은 프롤로그에서 설명하듯 제1장은 글을 쓰되 들리는 글을 써야 함을 말한다. 이 책을 쓴 목적이 여기에 있다. 들려지지 않는 설교는 결국 시간 낭비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설교가 들리는가다. 들리는 설교는 논리성, 공감, 이미지화. 청중의 이해, 하나님의 마음, 개념,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할 때 가능하다. 독자들은 6가지 들리는 설교의 요소를 이해하고 숙지함으로 청중과 소통이 되는 설교를 기대한다.

 

2장은 설교가 글과 글의 만남임을 말한다. 설교자는 글을 통해 청중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설교자는 날마다 글을 친구 삼아 갈아가야 한다. “공부하지 말고 독서하라는 말이 있다. 독서는 평생 하지만 공부는 일정 기간만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설교자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일정 기간만 공부하는 자가 아니라, 평생 책과 함께 살아가는 자다. 독서 할 때는 신학뿐 아니라 인문학 독서를 병행해야 한다. 인문학 독서가 중요한 것은 논리성, 사고력, 글쓰기 향상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자의 논리력 향상과 사고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면 안 된다. 설교는 글로 구성되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설교자는 글과 친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이 힘든 과업이 아니라 기쁨의 과정이어야 한다.

 

3장은 진짜 교회를 세우는 진짜 설교자의 자격을 말한다. 설교자가 진짜와 가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중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설교자가 진짜다. 이왕이면 진짜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진짜 설교자가 되려면 설교자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청중은 설교자의 성장만큼 성장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설교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4장은 설교자가 시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함을 말한다. 이 시대는 성경만 알고 시대를 모르면 설교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면 도태된다. 따라서 설교자는 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설교자는 나쁜 의미로 시대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의 한구석에 몰려 외면당한 채 존재할 뿐이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는 성경은 물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에 능통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설교자도 설교 한 편에서 하나의 메시지만 주어야 한다. 설교의 포인트가 세 개가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

 

5장은 설교자들에게 설교 글쓰기가 숙제가 아니라 축제여야 함을 이야기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를 숙제로 한다. 설교는 숙제가 아니라 축제인 상태로 해야 한다. 설교가 축제가 되게 하려면 설교 글을 쓸 줄 알면 된다. 설교자는 설교 글쓰기를 배워서 자기 글로 설교할 때, 설교시간은 설교자와 청중에게 축제의 장이 된다. 들리는 설교를 할 수 있기 위해 설교자들이 가질 마음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둘째, 청중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이 둘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들리는 설교를 하라고 부탁하는 김도인 목사는 처음 논리적인 글쓰기를 강조한다. 이미 논리로 무장된 청중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며, 무시하는 설교자는 무시됨을 역설한다. 성경도 논리적인 책이며, 하나님도 논리적인 분이고, 청중도 논리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설교자만 개념없는 무논리로 설교할 때 말씀은 튕겨지게 되고 외면받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설교는 글쓰기다>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고 반복하며 지속하라는 것이다. 설교자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성도는 변화되지 않고, 교회는 후퇴함을 직시해 주었다.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어야 명품 설교자이다. 명품 설교자는 카피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카피와 표절은 흔하다 못해 당연한 일상처럼 굳어졌다. 이 또한 나만의 논리적 비약일지 모르나 본인도 그런 적이 있고 여타의 목회자들은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예상을 해본다. 김도인 목사는 카피 설교에서 탈출하라 말한다. 스스로 쓴 설교로 설교하라 말한다. 그러나 잘 써야 하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성도는 좋은 설교에 변화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여타의 프로그램과는 반대의 목회다. 단시간에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이란 매개체가 아닌 글쓰기란 본질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느리다. 하지만 목회는 지속되는 과정이다. 빠른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느리더라도 진짜를 붙들어야 진짜 목사, 진짜 설교자가 된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다시 자세를 잡는다. 삶의 가지치기와 몰입이 시작되었다. 어려움을 실감한다. 심방, 교육, 모임 등으로 갈등이다. 아예 끊어버릴 수 없기에 최소하시켰다. 그리고 성경, 독서, 글쓰기에 나를 묶어놓았다. 나중엔 이 글쓰기를 통한 나의 목회가 나를 잡아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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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로 읽는 교회다운 교회
손윤탁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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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운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

지금까지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없는 교회는 찾아보지 못하였다.

다만 문제를 방치하는 교회와 극복하는 교회가 있을 뿐이었다.

손윤탁 목사의 "고린도전서로 읽는 교회다운 교회"는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개척했지만 바울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장 먼저는 파당의 문제와 음행, 은사 사용의 문제로 교회는 혼란을 격게 되었다.

그 소식을 바울은 에베소에서 듣게되며 그 처방 또한 단호하다.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들은 교인으로 부신 것이 아니라 성도로 부르셨노라고.

교인과 성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다.

성도가 믿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교인은 자기 생각과 감정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따라서 교인에게는 헌신과 사명과 순교를 기대할 수 없지만

성도는 울면서도 예수를 따르는 행함을 볼 수 있다.

손윤탁 목사의 교회다운 교회를 읽고 내 마음에 가장 크게 각인된 것은

바로 성도가 교회라는 것이며 성도는 믿음에 책임지는 삶이 동반된 다는 것을 깨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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