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집
전기철 지음 / 메이킹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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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집.

책 표지부터 디자인까지 거미를 연상시키는 점이 가장 먼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에세이적인 소설이라는 것도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도 궁금했다.

이 소설은 한 생이 얼마나 순서없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는가를 두서없는 문체로 보여주는 픽션이라고 했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정말 순서없이 복잡하게 나열되는 문장들이, 두서없이, 끝없이 펼쳐졌다. 소설 첫부분에 '이 글의 목적지는 없다(p.13)'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더 확실해졌다. 이 글의 목적지는 없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쓰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며 반복되다 멈추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겠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아니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그 깊은 뜻을 이해하려면, 잠시 멈춰야 하는 책.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 거미의 집에서 거미줄을 치듯이 모은 문장들 ▼


#8 어머니의 말은 부숭부숭하고 가르릉거린다.

📗 부숭부숭하다 = 살결이나 얼굴이 깨끗하여 아름답고 부드럽다.

책을 읽을때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만나면 뜻을 찾아본다.

작가의 표현일까 실제 있는 단어일까 궁금하다.

말이 부숭부숭하고 가르릉 거린다는 표현이 참 묘하다.


#17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내 다리는 걷기 위해 충분히 단련되어 있고, 눈은 새로운 사물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 나도 걷는 걸 좋아한다. 버스를 타며 지나쳐가는 거리에서 걷다보면 마주하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사물'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눈도 공감한다. 걸으면서 내가 눈으로 마주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표현들이라 생각든다.



#31 누구나 자신 속에 또 다른 자아가 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단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 나는 때로는 너였다가 내가 되기도 하고, 그나 그녀, 혹은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내 안에서 쓴다.

📙 작가 안에 있는 다양한 자아가 쏟아내는 문장들로 구성된 게 이 책이 아닐까 생각든다. 내 안의 나가 내뱉는 말들이 모아 문장이 되고 책이 된다는 걸까.


작가가 말하는 거미

#11 기다림은 독이다. 나는 그녀의 거미줄에 걸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

#28 거미는 세상을 거머쥐고 있다. 마치 인형 마술사처럼.

#29 거미는 우주를 헤엄쳐 다닌다.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는 말들은 의미를 상실한다. 그것은 침묵일 수도 있지만 소음이 되어 사물의 귓속으로 스며든다. 껍을 씹을 때 그 속에 무수히 많은 말들이 함께 씹힌다. - P51

너는 나이고 나는 너다.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고, 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멎은 시간 속에서 나는 우주를 유영한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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