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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83
조용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평점 :
용산 성당
사제 김재문 미카엘의 묘
1954 충남 서천 출생
1979 사제 서품
1980 善終
천주교 용산교회 사제 묘역
첫째 줄 오른편 맨 구석 자리에 있는 묘비석
단 세 줄로 요약되는
한 사람의 生이 드문드문
네모난 봉분 위에 제비꽃을 피우고 있다
돌에 새겨진 짧은 연대기로
그를 알 수는 없지만
스물다섯에 사제복을 입고 다음해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젊음이
내게 이묘역을 산책길의 맨 처음으로 만들었다
창으로 내려다보면 커다란 자귀나무 가지에
가려진 그 아래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어떤 사람들의 生이
숫자들을 앞세우고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들의 삶을 해독하는데
한나절을 다 보낸 적도 있다
그는 이 묘역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봄날을 오래 붙들고 있다
시를 일고 있으면 시집 한권 이 시인의 삶 전체 인듯 싶을 때가 있다.
그 삶을 팔에 끼우고 물을 붓고 있는 사람들
그녀의 시편들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심상한 듯 보이는 용산성당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어쩌면 내 죽음 앞에서 내가 살아왔던 삶을 어느 누군가가 헤아려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칠 못하다. 나는 그 순간 조차도 모든걸 되돌려
보내지 못하는구나... 헛살았구나..
조용미의 시나 김연주의 시를 읽고 있으면 스산하지만 절박한 내면의
죽음을 목도할 수가 있다.
누군가가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내 목에 감긴 굵은 줄을
스르르 풀어내고 잇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