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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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정신과 전문의로 살아 온 정혜신 선생님은 몇 년 전부터 진료실 밖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특히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상담치료에 뛰어들며 비로소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의 강연을 수록한 책이다.



난 차암 단순했다.
제목이 <사람공부>라길래,
‘나도 사람 공부를 해 보고 싶어’
라며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복잡한 존재를 어찌 이 얇고 가벼운 책 한 권으로 배울 수 있을까.
나의 얇팍한 꾀는 얇팍한 상술을 탓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사람’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
그 중에서도 ‘상실을 마주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미처 계산치 못한 방식으로 유익했다.
나는 상실을 마주한 사람들을 마주하면 항상 어찌할 바를 몰라 허우적대는 미숙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찌나 미숙한지 세월호 사건이란 대국민적 상실, 대국민적 슬픔에도 난 마땅히 대처할 바를 알지 못했다. 어찌나 무지했는지 심지어 노란리본을 다는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난 이해하지 뭇하는 일은 안 하는 악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몇 년간 메고 있던 물음표를 이제서야 내려놓게 되었다.(나도 남들 노란리본 달 때 편안한 마음으로 리본을 달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이 책 좀 더 일찍 만났으면 내 마음이 더 편했을텐데...

아무도 모른다, 홀로 고립되었다, 내 고통을 세상은 다 잊었다는 느낌은 사회적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에게는 치명적이에요. 그래서 삶의 끈을 놓는 거죠.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에요. (...) 과장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한 모든 사람은 치유자에요. 114쪽

이 책은 이렇게 나같이 사회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인간들을 구제할 수 있는 책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우리 사회의 품격은 어떠한가요? 118쪽



또한 정혜신 선생님이 이 책에서 여러 차례, 힘있게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공부는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서 공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는 노력을 통해 된다는 것. 바로 본인이 후자의 경우에서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령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내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있다면 오로지 그걸 하는 데 모두 쏟아야 한다고 느껴요. 내 지식, 내 힘, 내 명민함,나의 분석과 계몽, 내가 배운 치유기법 등으로 사람이 구해지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니까요. 94

그러므로 치유의 수단과 방법을 꼭 전문적인 것에 국한 시킬 필요는 없으며,

밥상이나 뜨개질처럼 우리 일상 속 도구들에 숨어 있는 치유적 요소를 더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상처입은 사람에게 가장 깊고 빠르게 스미는 치유제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뼈져리게 느낀 사실입니다. 94

전문적인 공부는 오히려 치유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상황보다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몰입이 더 강한 경우가 현장에서 심리상담이나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을 더 쓸모없에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이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전문지식이 현장에서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는 거죠. 55


정혜신 선생님의 말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목적으로 꼭 심리나 상담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도 사실 어불성설이다. 주변에 심리적 고통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주변의 아픈 마음들만 잘 보살펴도 사실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하는 것은 사실 더 대단한, 그럴듯한, 남들이 우러러 볼만한, 무언가 되겠다는, 알고보면 자기 욕심은 아닐지. 그렇게 되는 것이 꿈이라면 권장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심리 및 상담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이들의 수요에 맞춘 얇팍한 자격증 및 교육기관이 속속들이 생겨나는 요즘, 한번쯤 읽어보며 한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할만한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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