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유한 포슈 가의 늦은 밤.
자동차 안에서 한 남자를 관찰하는 여자가 있다.
차문을 연 그녀는 닥스훈트와 산책하는 남자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그리고 꺼내 든 이글 권총.

잠시 후, 여자는 차에 오르고, 유유히 떠난다.
포슈 가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살인 사건은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예순 셋. 작달막한 키에 몸이 딱 벌어지고 뚱뚱한 체격.
세월로 느슨해진 나이지만 관리만은 철저하다.
값비싼 옷과 화장, 세련된 미용과 완벽한 네일.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마틸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직업인 여자다.
피가 있는 곳에는 언제가 마틸드가 있다.

⠀ ⠀

파리의 번화가에서 살인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중심에는
노년의 킬러와 잃어가는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레지스탕스 출신인 마틸드는 한때 완벽한 킬러였지만
이제 그녀의 세계는 조금씩 흔들린다.

기억은 흩어지고, 판단은 어긋난다.
조직은 점점 그녀를 쓸모 없는 존재로 밀어내고
사회 역시 흔한 노년의 그녀에게는 기대치가 없다.

무너져 가는 존재는
더 이상 킬러로 기능할 수 없다.
남는 것은 기억의 균열과 판단의 실패 뿐이다.
이 세계에서 윤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상적인 도구였던 존재가 위험한 변수가 되는 순간,
그 다음 단계는 제거 대상이 된다.

⠀ ⠀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이러한 설정은
기존의 누아르 장르를 비틀어 놓는다.

완벽을 요구하는 킬러에게
기억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장치를 씌워
냉혹한 범죄 서사 속에
인간적인 불안과 혼란을 끌어들인다.

우리는 마틸드와 같은 시선에서
그 불안정한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 ⠀


살인은 충분히 파괴적이며,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인물들조차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 배경에는 효율성과 통제 가능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현대 사회의
냉혹한 구조가 그대로 겹쳐지며
읽는 내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형 시점으로 쓰여져
사건의 긴장과 속도감을 높이며
생생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
❝마틸드는 어떤 존재였느냐면...
앙리는 적당한 단어를 찾아본다..

그녀와 함께 일하기를 피하는 이들과,
이와는 정반대로 오직 그녀만을 신뢰하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로 선명하게 나뉘었다.

그녀는 유령이자 수호신이었고,
뮤즈이자 부적이었으며, 여신이자 악마였다.❞

⠀ ⠀

❛내가 가진 확신은, 누아르 독자는 피와 죽음,
즉 불공정함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문자 뱀》에서
피에르 르메트르가 보여주는 누아르의 방식이다.

⠀ ⠀
도서제공 @openbooks21

#대문자뱀 #피에르르메트르
#열린책들 #누아르 #스릴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