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기억에서 생겨나는가?배양육에 기억을 이식하면 인간이 되는가?이것이 최초의 질문이었다.❞⠀소년은 아름다웠다.그들의 언어는 달랐고, 전쟁 포로인 소년과 그녀는제국인들의 명령에 따라 이곳 행성의 괴물을 물리쳐야만 한다.하얀 세계의 낯선 행성.하늘은 뿌연 회색이고 땅조차 사방이 하얀 안개로 덮여 있다.그곳에서 마주친 괴물은사람의 형체를 한 하얀 유령같다.반투명한 둥근 헬멧을 쓰고하얀 빛기둥을 휘두르는 하얀 생명체.이 행성에서 반드시 물리쳐야 할 ❛괴물❜은정작 전혀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소년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고,남자가 죽었으나 죽지 않았고,녹색 치마의 여자는 죽지 않았으나 다른 곳 어딘가에서 죽었고...❞기이한 일들의 연속.벗어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이 고립된 행성에서그들은 과연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붉은 칼》은 정보라의 SF소설로일부 챕터가 추가되고 개정되며이번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다시 출간되었다.작품은 전쟁의 폭력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식민인들의 절박함을 기괴하고 몽환적으로 그려낸다.고립된 환경 속에서도생존을 향한 강한 집념은 여성의 시선으로 이어지고,처절하게 싸우며 연대하는 이들의 시간 속에서우정과 사랑 역시 점점 짙어진다.⠀⠀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은 ❛기억❜이다.유전자가 조작되어도 기억이 존재한다면그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나의 기억을 갖고 있는 그는 과연 나인가.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 건가.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이 작품은 이러한 질문을 따라가며존재의 이유와 정체성의 경계,그리고 진정한 해방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이 서사는 현실의 정보라 작가와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부조리를 향한 그녀의 투쟁이 현실 곳곳에서 이어지듯,소설 속 주인공 크라스나 역시자유와 생존을 향해 치열하게 싸워 나간다.서툴렀던 포로의 모습에서 어느새 여전사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녀는전쟁에서 마주한 참혹한 진실과 절망에서도굳건하고 명료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이는 분명 정보라 작가의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색으로 표현된 인류의 정체성이다.지배하려는 제국군인들은 모두 회색빛이었으며행성의 외계인들은 하얀색으로 둘러싸여 있었고오로지 제국의 포로만이 색깔이 있었다.하얀 외계의 행성에서 색이 주는 강렬함.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내가 아는 영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뛰어들어 옆 사람의 잡은 손을 절대로 놓지 않는 그냥 보통의 평범하고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붉은 칼》은 지금과도 같은 전쟁의 폭력과 인간의 존엄을 끈질지게 파고다.이 소설과 닮아 있는 지금의 현실이어쩌면 진짜 SF일지도 모른다.⠀⠀ 도서제공 @rabbithole_book#붉은칼 #정보라 #래빗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