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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루스트 - 삶의 슬픔과 희열, 위로와 예술을 알려준 우리들의 프루스트를 찾아서
김주원 외 지음 / 현암사 / 2026년 1월
평점 :
프루스트는 ❛모든 독자는 책을 읽을 때 자기 자신을 읽는 독자다❜라고 했던가.
문장과 문장은 온갖 프루스트식 메타포로 가득 차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심한 시간의 감각은 긴 호흡을 요구하기에 숨이 차오른다.
그럼에도 왜 프루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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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프루스트는 상실과 함께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중한 이의 상실을 겪게 되었고, 그렇게 중단되었던 책을 어렵게 다시 읽기 시작할 때 쯤, 또 한번의 상실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게 프루스트는 내 손에서 멀어져 갔다.
작년을 기점으로 프루스트는 다시 상실이자 애증의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책을 드는 순간 잊었던 상실을 부활시켰으니까. 그 시간속에서 부유하며 다시 프루스트라는 렌즈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감각되고 재해석되는 경험을 마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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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향한 각자 고유의 시선과 개성을 서사화한 앤솔러지다. 열 명의 필자가 모여 각자의 생애와 경험을 프루스트 작품에 접속시키며 ❛나의 프루스트❜라는 순수한 애독자의 독서론적 관점을 보여준다.
프루스트 소설의 묘미를 분석한 봉준수 교수는 〈길이를 화두 삼아〉에서 이 소설을 즐겁게 읽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읽어내는 독서의 초점 변화를 제안한다. 망각과 오독도 독서의 경험임을 받아들이라는 그의 말은 방대한 이 소설의 부담감을 다소 해소시켜 주기도 한다.
피아니스트 김주원 교수는 〈프루스트에게 피아노에 대해 배운 것〉에서 ❛프루스트의 길고 구불구불한 문장 또한 쇼팽의 선율을 닮았다❜(p.47)고 비유하며 문장이 음악처럼 감수성과 진지함,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고 말한다. 소설 속 ❛뱅퇴유의 소악절❜과 실제 음악을 연결하는 해설은 프루스트를 감각의 예술로 확장시켜 준다.
한편 〈프루스트에게 배우는 일상의 글쓰기〉에서 오선민 연구원의 표현 ❛어느 한량이 긴 세월에 걸쳐 자기 삶의 에피소드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소설❜은 프루스트를 유쾌하게 환기한다.
또한 〈읽다 말다 또 읽다 : 버지니아 울프의 프루스트〉글의 윤혜준 교수는 버지니아 울프도 끼고 다닌 프루스트지만, 그녀조차 완독을 하지 못한 걸로 추론하는데 이점은 ❛완독❜의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위안을 전하기도 한다.
(울프도 완독하지 못한 프루스트다.)
이처럼 이 책은 누구에게나 ❛나의 프루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걸 각자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읽다가 멈추고, 망각하여 다시 되돌아가고, 오독하는 경험들이 모두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프루스트와의 시간은 다시 밀도있고 내밀한 독서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의 시간을 다시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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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프루스트는 한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한 작가를 통과해 변주되는지를 보여주는 고백에 가깝다. 그것은 시간의 맛이 아니라 시간의 결이었다. 감각을 통해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게 만드는 존재. 과거는 단순히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새롭게 직조하는 힘이 된다. 상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형태를 환기하여 현재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그것은 슬픔이면서 동시에 내가 사랑받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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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적 독서는 삶을 직선이 아닌 층위로 바라보게 한다. 현재는 과거를 품고 있고, 과거는 감각을 통해 다시 현재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 감각의 문을 여는 열쇠는 이미 우리 각자의 손 안에 있다.
도서제공 @hyeon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