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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친연애가 실전편! 이라면 이 책은 이론편!이 되겠다.
참 제목과 반대되서 아쉽게?느껴지지만 한 5페이지 정도 읽고보니 바로 그런 생각은 휙~~저멀리 가셨다. 왜냐? 진짜 존나 아아오 이걸 설명할 방법이없네 빅잼 빅빅빅잼. 야아 기분좋다 점점 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좋은 책을 골랐을때의 쾌감이란 으으아
헠헠 이맛에 읽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이 참에 밝히는 건데 "**야 너는 왜 책읽어?"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있었는데 그때 내 대답이 자추하는 것같지만 명언이라서 이렇게 남기고싶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냐면
"어, 그건 말야 음..마치 음식을 먹는 것과 같지. 하루하루 밥을 먹잖아? 근데 밥을 먹고 나면 남는건 뭐지? 그래 똥이야. 뭐든지 최종적으로 똥으로 나오잖아. 근데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잖아? 책읽는 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 읽고 나면 똥쓰레기처럼 남는 건 없다고 생각될진 모르지만 에너지를 얻는거지, 선인들, 위인들의 정신 에너지를 얻는거지. 다양한 책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살면서 다 해볼수는 없잖아? 다양한 생각들을 하다보면 뭔가 경험을 많이 하게되고 나는 살면서 가능한 최대한으로 경험을 많이 해보고싶다는 소망을 이런식으로 이루는 것이지!"
kiaaaaaaaaaaaaaa
아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 다시 얘기하자 얘기가 진짜 많이 샜네. (이런거 보면 학교다닐때 선생님들이 왜 수업과 관련없는 말을 많이 하실까?라는 물음에 경험으로 답한 것 같다.)
인간은 모두 분리성에 두려움을 갖고있다. 이 두려움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벗어날때 갖게되는데 흔히들 듣는 자궁회귀로의 욕구가 바로 이 분리성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꽤 여러가지로 발현이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랑, 집단의 소속이다.
인간은 집단에 소속되어 개인이라는 일부가 집단 전체로 확장되면서 느끼는 일체감을 갖고싶어한다. 왜 단체에 소속되고싶어하나라는 것은 나는 의지를 갖고있지만 집단의 의지가 마치 내 의지인것 마냥 느껴버린다면 내가 의지를 갖고 유지해야할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라는 식의 설명도 가능하지만 생물학적인 이유는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나는 더 큰 존재다.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라는 원시적 부산물이라 생각한다.
사랑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세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부모의 자식사랑이고, 두 번째는 친구간의 사랑(우정), 마지막으로는 성과 성의 사랑(성애)인 것이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또 두가지로 나뉘는데 어머니의 자식사랑과 아버지의 자식사랑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할때 조건을 두지않고 사랑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일부, 직접적으로 살을 공유한 자식에게 자신의 삶은 아이에게 전가되어 유지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권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싶어한다. 권위를 물려줌으로써 세상속의 분리감을 없애고 싶은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다. 너가 나에게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너에게 사랑을 주겠다.식의 사랑이 자식에게 발현된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만 점차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위해 힘쓰며 자신도 분리감으로부터 잠깐동안 멀어질 수 있다.
그렇게 자라나며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것이 우정이다. 부모님과는 동등하지않지만 친구는 동등한 관계이다. 친구간은 서로를 돕기 위해서는 협력을 해야한다. 협력은 곧 말이 잘 통하는 상대로 생각되어지는데 이 친구와 같이 있다보면 분리감을 느낄 수 없다. 이 친구가 곧 나이니까,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친구. 함께있으므로 분리감따위는 느껴지지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채울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 무엇을 채우는 것은 성과 성의 사랑. 즉 성애인 것이다. 성애는 친구로써만 느낄수있는 일체감을 생물학적으로도 느낄 수 있기때문에 강력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가지 목표를 위해 살아가기도 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함께함으로써 그 태초로부터 느끼던 두려움, 분리감을 영원히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 애초에 다른 존재기 때문에 절대로 일체감을 느낄 수 없다. 잠시동안은 느낄 수 있을 지 몰라도, 성적결합의 그 짧은 시간동안만은 잊을 수 있다. 지겹도록 쫓아다니는 분리감에 두려움에서,, 세계속으로의 합일은 성애로 잠깐만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을 잘 유지하고 존속해야만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분리로의 두려움을 떨쳐내야 인간은 완전해진다고 믿는다.
사랑은 관계맺기의 결과물이다. 너와 상대방의 관계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순위매기기'로써로 이루어 졌느냐? 아니면 '관계맺기'로 이루어졌는가이다. '순위매기기'로써의 관계는 너가 하나를 주면 하나를 기대하게되는 것이고, '관계맺기'는 이익과 관련없이 그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사랑이 순위매기기로 전가되는 순간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저울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관계맺기에서 순위매기기로 넘어가면서 사랑은 끝이난다.
관계맺기는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사회속에서나, 연인간에서나..관계맺기를 잘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먼저 손내밀수있는 그런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 행동의 제약은 그저 겁낼뿐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세계를 떠나야한다는 분리감..!이 두려울 뿐이다. 그렇게 살아오지않았다고 계속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리로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그 두려움을 극복해나가야한다. 그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 직접 깨닫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본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의를 갖을 법하다.
사랑은 기술이 필요하다. 맞춰준다는 굴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관계맺기라는 위대함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다. 시궁창인 사랑을 만드는 건 자신이다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크 이제부터 보빨러하지말고 김장남으로 합시다!라는 느낌?과는 한창다른 차원이지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