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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알라딘에서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정말 고마웠던 건 나 혼자 고른다면 절대 고르지 않을 여러 책들을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 책들은 나에게 뜻밖의 깨달음을 주곤 하는데 특히 내가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에. 이런 삶도 있구나. 난 참 작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이 책은 미국의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막내 동생인 음악비평가 마이클 길모어가 그의 형과 가족을 회고하며 쓴 이야기로, 게리 길모어의 범죄성이 그들 가족의 역사 어디에선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는 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이것은 게리의 행동을 이해-물론 살인은 이해받지 못할 짓이지만-함과 동시에 저자의 상처 또한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마치 영화같은 이야기라 쭉 이어가며 읽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아버지에게 학대 받은 어린 시절이 주를 이루는 다른 형제들의 삶과는 달리 저자는 유난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형제들은 그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가족에 온전히 포함되지 못한 채 주변자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가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때때로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너도 결국 다르지 않다고.

 

 

  아니다, 결단코 나는 그런 것 따위는 믿지 않는다. 몇 년 전, 내가 옛집에 가보려고 했던 이후에, 마침내 작고 어두운 방 안에서 무엇인가 섬뜩한 것과 마주쳤을 때에도, 그것이 내 생의 최악의 순간에 내 목을 움켜잡고서, "난 널 알아. 네가 마지막이지. 자, 이제 널 데리러 온 거야."라고 말했을 대조차도,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니야, 이 유령은 실재가 아니야. 이 유령은 다른 곳에서,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거야. 그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유령보다 더 무섭게 나를 움켜잡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만약 부모 중 누가 게리에게 더 악영향을 끼쳤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버지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읽는 내내 혹시 어머니가 현명한 자였더라면, 가족 중 누군가는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역량이 있었더라면 결국 사단이 나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두꺼운 책 안에서 그 어머니가 현명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딱 한 부분 뿐이었다. 물론, 현명한 여자였다면 과거도 알 수 없는(그러나 어쩐지 어두운 냄새가 나는) 남자랑 훌쩍 결혼하지는 않았겠지.

 

 

  그때 어머니가 그 난장판에 뛰어들었다. 어머니는 큰 빗자루를 들고 와서, 프랭크 형의 머리를 내려치면서 말했다. "그만 좀 해. 그만하면 됐잖아. 프랭크, 내가 널 경찰에 신고했다. 어서 밖으로 달아나." 프랭크와 게리는 깜짝 놀라, 싸움을 멈추고 어머니를 봤다. "이제 그만 게리를 놔둬라." 어머니가 프랭크를 보며 다시 말했다. 프랭크는 몹시 침통한 얼굴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다음 꽝 하고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어머니가 맏형 프랭크의 편을 들었더라면 게리는 가족들의 부고를 들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기를 치며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가족과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 어머니는 중산층의 번듯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사기 같았던 사업은 어쩐지 자리를 잡아서 그들을 여유로운 환경에 두었지만 이미 형제들은 동네에서 악명 높은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특히 둘째 게리와 셋째 게일렌이. 그리고 게일렌이 먼저 칼에 찔려 죽는다. 물론 게리는 장례식에 오지 못했다.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며칠 동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게일렌이 하루하루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문병을 가지 않았다. 곧 퇴원할 텐데, 뭐. 스스로에게 그렇게 변명했다. 그럼 그때나 가봐야지.

 

 

  저자가 어쩐지 형을 보러가고 싶지 않아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 부분이 나는 -형제 중 비교적 평범한- 저자가 이 아수라장 같은 가족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끝까지 어머니 곁에 남는 프랭크만이 병원을 다녀간다. 그리고 회복세를 보이던 게일렌 갑자기 죽는다. 물론 방문을 미룬 행동은 저자에게 큰 후회로 남는다. 가족을 외면해버리고 싶다고 해서, 정말로 가족을 외면해 버렸을 때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는 별로 없다.

 

  게리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와도 게리는 그것을 잡지 못한다. 이를 보고 저자는 게리에게 화를 냈지만, 어쩌면 평범한 상황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평온한 대학교가 주는 위압감은 어쩌면 범죄를 편안히 느끼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국 익숙한 것을 좋아하니까. 범죄에 익숙한 그의 모습은 사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과, 불우한 환경 탓도 컸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그러나 이것을 환경 탓으로 돌려버린다면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파국을 맞지 않은 이들은 무어란 말인가. 외면하기엔 안타깝지만 동시에 포용하기엔 너무나 타락한 인생이었다.

 

 

  게리를 만나고 온 그날 밤, 나는 한숨도 못 잤어. 이제 다시는 게리를 보러 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으니까. (중략)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단 하나 마음에 걸린 건, 내가 진심으로 게리를 사랑했다는 걸 그 애가 모른다는 사실이었어. 게리는 결국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자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하고 갔을 거야.

 

 

  게리는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다. 감옥에서 게리는 도주 중 잡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자에게 와 범죄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을 것이고, 저자는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저자를 죽였을거란 이야기를 한다. 사형을 선고받은 게리는 죽음을 선택한다. 사형 제도가 제대로 부활하지 않았던 곳에서 부활한 사형제도의 첫 사형수가 되기를 자처하는 그의 이야기를 미국 전역은 주목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또한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시끄러운 뉴스 뒤의 누군가는 자식이, 형제가 사형수가 되어 어느 날 죽을 것이고 그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있다. 프랭크와 저자는 게리가 진심으로 죽음을 원한다는 사실에 그를 위한 노력을 모두 포기한다.

 

  살아남는다면 인생에서 더 이상 자유는 없을 사형수에게 죽음이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형수에게 사형이란 어느 아침에 다가올 지 모를 끔찍하기만 한 미래라고 생각했었다. 사형을 선택하는 사형수를 보고 당시 사회가 얼마나 놀랐을 지 짐작이 간다. 그런 태도는 어쩐지 사회의 반성을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횡포가 가족을 망가뜨렸다. 그것을 주변의 누구도 바로잡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보듬어주지 못한 소외된 사람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우리의 인생이 '계속'되며, 인생에 있어서 죽음 말고는 종지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게리와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사람들, - 우리 가족들과 게리에게 살해된 사람들- 그들만이 이 이야기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 끝마친 사람들이고, 과거의 유산에 대해 대가를 치렀거나, 혹은 대가를 모면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남아 있는 우리들은 그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죽은 자들의 유산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삶을.

 

 

  게리의 이야기가 끝난다고 해서 가족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집 안에 자신을 고립시켰고, 저지는 가족을 떠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프랭크는 잠적을 해버린다. 10년 간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들이 재회했을 때, 어디선가 내 동생은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겠지 하며 위안했다고 프랭크가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차라리 프랭크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가족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결국 끝까지 남았고, 잘못 된 길을 가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동생에게 기억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고보니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었던 그는 저자보다 훨씬 짙게 죽은 자들의 유산을 계속 이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삶이 그 모든 유산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의 유산은 사라져야 하며, 자신과 프랭크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이 없으니 곧 사라질 것이라 여러 차례 기술한다. 그것을 그렇게 당연한 듯이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대체 얼마만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고통을 남에게 더 큰 고통으로 갚아준다. 누군가는 자신을 파괴하고, 누군가는 감내해내며, 누군가는 도피한다. 사회와 그것이 길러낸 악(惡)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하는 책이다. 자신의 치부를 이리도 적나라하게 밝힌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탄을 표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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