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책의 날을 맞아 질문 10개에 대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적립금보다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대답해 본다! 요즘 자소서를 쓰는 친구들이 많다보니 감명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된다. 요 몇 년, 주위에 책 읽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래저래 평소에 책이 이야기 주제로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근데 갑자기 친구들이랑 책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어서...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흥분한다. 덕후란 그런 것입죠. 누군가 덕질을 물어봐주면 흥분하게 되어 있다고!ㅋㅋㅋㅋㅋㅋ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여기저기..? 일단 가장 많이 보는 곳은 침대. 자기 전에 읽다 잠드는 습관이 있어서(+인테리어로 독서등을 만들었더니 어찌나 예쁜지 자꾸 쓰고 싶은 마음까지 추가되어) 침대 옆에 자꾸 책이 쌓여간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장소는 지하철. 지하철은 눈 앞에 뭔가를 보고 있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 책을 보지 않으면 핸드폰을 할 것을 알아서 책을 꼭 챙기려고 하는데... 일단 핸드폰 켜면 책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여하튼 책 때문에 몇 정거장 더 간 적도 많다. 그 다음으로는 카페, 학교 다닐 때는 강의실... 이런 식! 자투리 시간에 읽는 걸 좋아한다. 생각보다 그 시간이 참 길다는 걸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읽는다. 처음 전자책을 시도한 것이 아이패드였던지라 눈이 아프다는 편견만 생기고 관뒀다. 이 편견을 영국에 가서 킨들 리더기를 산 후에 깼는데, 깼는데... 킨들도 지금 어디있는지 모르겠는데(아 영어 책을 읽겠다던 허망한 꿈이여) 한국 책을 위한 리더기를 또 사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 물성이 가진 무언가가 있어!

  몇 달 전까지도 나는 '책에 흠집이란 있을 수 없다'파였다. 이 생각을 박웅현 작가님의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서 좀 버렸지만 그래도 계속 고수했다. 그런데 요즘은 좀 태도를 바꿨다. 일단 흠집을 내지 않고 책을 읽으면 한 번 읽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한 번 읽은 책의 숫자가 많아져봐야 남는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책을 여러 번 읽거나 좀 더 마음에 남겨가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작가님의 독서법이 생각난 거지. 요즘은 포스트잇 정도는 붙이는데, 그렇게 해두고 다 읽은 후에 표시한 부분을 정리해서 리뷰를 스곤 한다. 마음에 쏙쏙 들어온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장점과 리뷰가 어쩐지 그 문장들에 얽매이는 것 같다는 단점이 있다. 지금 마음같아서는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고 싶은데 몇 년 간의 관성이 있는 터라 겁이 나서(?) 선뜻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배포가 커지면 시도할 수 있겠지. 언제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지금 머리맡에는,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와 "네 심장을 향해 쏴라" 두 권이 있다. 리뷰를 써야 하거든요^-^ 그 전에는 "어쩌다 한국이"과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있었다. 그 전에는 "폴리팩스 부인...어쩌구저쩌구"하는 가벼운 추리소설이 있었고.. 많은 책들이 거쳐갑니다! 확실한 건 내가 읽은 책들은 전부 최소한 한 번쯤 내 침대 위에 올라온 적이 있다는 것.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소장하기를 즐겼으나 무소유의 즐거움을 깨닫고(ㅋㅋㅋㅋ) 알라딘에 중고서적으로 한참 팔아넘긴 뒤 최대한 안사려고 하고 있다. 책은 책이 될 수도 있지만 그저 종이의 묶음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최근에는 빌려 읽은 후에 1)사고 싶다  2)계속 생각해봐도 사고 싶다  3)반복해서 읽으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고 계속 되새기고 싶다  4)그러니까 정말 사고싶다 의 마음구조를 거치면 산다. 요약하면 그냥 좋으면 산다.

  배열에는 아직 딱히 구조가 없다. 책 모양보다는 내용 위주로 모으는 편이고 여행이면 여행, 역사면 역사, 소설, 뭐 이런식으로 느슨하게 해 두었다. 아무래도 '내 책장'이라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쓰는 책장'이라 내 규칙을 적용하기 애매하다. 그렇다고 혼자 쓰는 책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거기엔 장식품과 화장품이... 하하하... 덕후 자격 박탈인가.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몇몇의 후보가 있는데 하나는 다음 질문을 위해 남겨두고 나머지를 언급해 보겠다. 일단 아동용 '로빈슨 크루소'. 어디 가서 집짓고 막 새로운 걸 개척하고 그런 류의 책을 참 좋아했다(1318문고의 '손도끼'라는 책도 재밌었음).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여사의 '비밀의 화원'도 비슷한 맥락으로 화원을 발견하고 꾸며나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ㅠㅠ 이런 화원은 지금도 갖고 싶다. 이 비밀의 화원류의 애정이 확장된 게 타샤 튜더 할머니 시리즈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의 정원' '타샤의 집'은 지금도 제 옆에 잘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셜록 홈즈와 해리 포터(해애리 퐈터!). 얼마 전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10~20권 꼽아보라는 질문을 받고 과연 이 두 시리즈를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깊게 고민했지만 결국 넣었다. 영향을 받은게 사실인걸! 셜록 홈즈는 어떤 권은 진짜 100번도 더 봤을 거다. 심지어 해리 포터는 전체 책을 쭉 짚어가며 마법 주문을 다 적어다가 외우고 공부했다니까! 나한테도 입학 편지좀 보내 줘라 줘!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놀랄 책은 "찔레꽃 울타리"시리즈! 이것도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인데 적정 연령대를 지나서 엄마가 사촌 동생들에게 반강제물림을 해 주었다. 계속 기억에 남았는데 20살이 넘어서 문득 다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했더니 오.. 크기가 커지긴 했지만 아직도 판매를 한다. 한 번에 8권을 다 사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다른 책을 주문할 때마다 찔끔찔끔 산다. 지금 세 권 있다. 가장 최근에 산건 "높은 산의 모험"인데 다시 봐도 신나고 삽화 진짜 사랑스럽다. 내 자식한테도 보여줄거다.

  그나저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별로 놀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난 원래 좀 유치하니까 너답다는 소리를 들을 것도 같군. 쳇. 나한테만 놀랄 만한 책인지도? 만세!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고민하다가 번쩍 생각이 났다. 진짜 만나보고 싶은 사람, 꼭 만나보고 싶은 분! 백석 시인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정말 만나보고 싶고, 그분이 90년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 분의 시를 정말 좋아하고 정말 그렇게 가신 것이 한스럽다. 내가 경성에서 살았더라면 아마 나는 백석이라는 남자한테 홀딱 반했을 거다(백석 시인이 나를 거들떠 보았을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지금도 이미 반해 있다. 백석.. 백석을 만나고 싶고, 그냥 그분이 다른 환경에서 살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알고 싶은 것은 없어요. 그냥 한 번 만나고 싶어요.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빌 브라이슨의 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시작으로 이 사람의 여행기도 끝까지 읽은 것이 없다. 분명히 위트있는 글인데 왜 이렇게 안넘어감!?!?!? 재미 없다고 말하기도 곤란한데 재미없는 기분이 든다(?). 영국식 코드에 약간 익숙해지고서 이제는! 읽을 수 있겠지 하며 시도했다가 또 나자빠진 이후로 이제 시도할 용기조차 없다. 몰라. 언젠가 읽겠지 뭐. 마치 지금 다른 책으로 인해 너무 바빠 손대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예술 수업"이라는 책. 일단 이 수업이 우리 학교에 있었다면 나는 그 수업을 무조건 수강했을 것이다. 수업은 수강할텐데.. 시험공부도 열심히 할텐데... 읽다가 자꾸 끊기니까 기억도 안나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 좀 잔잔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기에 읽어야 추진력 있게 빡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지금은 그 빡!을 할 힘이 부족하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과연 무인도에 세 권의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어떤 상황일까. 아~ 나 무인도에 잠깐 다녀와야겠다~ 뭐 들고 갈까~? 의 상황이면 재미있을 책 3권. 황금가지 출판사의 셜록홈즈 7권(언제 읽어도 재밌징), 타샤의 집(뭔가 만들고 싶어질 것 같다), 그리고 꼭 읽어봐야할 것 같은 고전이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책 한 권. 예를 들어 안나 카레리나라던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던가, 레미제라블이라던가...

  하지만 배가 난파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홀로 무인도요 옆에 남은 것은 세 권의 책 뿐이었다는 상황이라면 일단 생존부터 생각해야겠다. 생존을 위한 기본 의학 정보가 나온 책 한 권(그런 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함정), 로빈슨 크루소(따라서 살아야지), 그리고 성경이는 불경이든 종교적 믿음을 줄 책 한 권. 힘들어도 살아야지. 힘들 땐 종교가 최고야(종교도 없는 주제에 막 던져본다).

 

 

  어이쿠, 길게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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