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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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가 날 입양해 준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효도 할 거예요!’. 어떤 헐리우드 스타가 자녀에게 입이 떡 벌어지는 선물을 했다는 기사를 읽고 누군가 올린 다소 철없는 댓글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인맥도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요즘, 이름만 대면 ‘아!’라는 놀라움 섞인 감탄이 나오는 재력가나 스타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과 친분을 맺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21세기의 사정이 이러한데, 결코 모두가 평등할 수 없었던 옛 시대는 어떠했을까! 그저 못난 부모 만난 탓, 가문 탓을 하며 왠만해서는 신분, 재력, 명예면에서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었던 시대에 막강한 힘이자 무기였을 권력가와의 인연의 끈! 여기 감히 얼굴 한 번 똑바로 쳐다봐서는 안 될 왕을 친구로 둔 인맥 종결자(?)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부러움에 넋을 놓고 있기에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야기! 서둘러 그들을 따라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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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아직은 왕자였던 무렵, 친구가 된 세 사람. '원’이라는 고려식 이름과 ‘이질부카’라는 몽골식 이름을 가진 고려의 혼혈 왕자, 맑고 정직하고 곧은 성품의 ‘’, 당차고 영리한 아가씨, ‘산’이 그들이다. 왕자는 물론이거니와 린과 산 또한 남부럽지 않은 집안 출신인 것도 모자라 세 사람 모두 아름다운 외모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자신들과 달리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한 사랑스러운 이들이다. 엄연한 신분차에도 진정한 친구로 다가서고자 하는 왕자를 믿고 따르는 린에게는 그를 왕좌에서 밀어내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형이 있고 산에게는 그녀를 린의 형과 결혼시켜 왕비가 되게 하려는 야심가인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복잡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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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한 정이 깊어질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별이 뚜렷해질수록, 우정은 미묘한 사랑의 감정으로 변화하고 사랑은 서로를 소유하고픈 욕망을 낳고, 이는 곧 질투가 되어 그들의 관계가 뒤틀리고 운명의 실타래가 엉키기 시작한다. 이들의 운명만큼이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라 사정이 계략과 권모술수로 변화를 거듭하면서 원, 린, 산은 더 이상 한 곳을 바라보는 동반자일 수 없었고 누구보다도 그를 지켜주려고 하는 린과 산의 사랑이 배신으로 생각되었던 원은 애증의 감정에 휩싸려 그들에게만큼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왕자로서의, 왕으로서의 권력을 휘두른다. 권력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던,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왕이 되기를 포기한 듯한 원이 겨누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의 끝에 선 린과 산, 그리고 칼을 겨누면서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슬픔으로 가득 찬 원. 그들의 운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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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와 사극을 통해 옛 시대의 왕이라고 해서 아무런 인맥적 후원과 지원 없이 마음껏 정사를 펼칠 수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원하는 인재와 여인쯤은 얼마든지 옆에 둘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처음 ‘왕은 사랑한다.’라는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일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변수라면 사별이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헤어짐 정도를 생각했었건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왕의 사랑 이야기 속, 여기저기 마음 아프기로 작정한 사람들 마냥 사모하는 이의 등을 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택하는 인물들, 그리고 독립적인 위치에 서지 못한 채 몽골의 눈치를 봐야 하는 나랏 사정. 무엇 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는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는 이국적인 고려와 몽골의 모습,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고려인들의 삶의 모습들이 잠시 잠깐의 한눈 팔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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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 주인공과 그들의 착한 주변 인물들은 물론, 평정심을 잃지 않는 냉철한 이도, 교활한 절대 악인으로만 느껴지던 이도 사랑 앞에서 무너져버리는 사랑 바보들만 등장하는 이야기. 하늘이 내린 신분의 왕이지만 그도 결국 사람이기에 사랑 앞에서 울고 웃는 이야기. 사랑하기에 함께 할 수 없기도, 나의 사랑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 사랑을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확장해 함께 할 수도 있는 성숙한 이들을 보여주는 이야기. ‘왕은 사랑한다’가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수많은 사랑의 감정이 깊은 여운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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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산, 린의 운명을 뒤쫒아 도달한 넓디 넓은 몽골의 사막에서 느껴지는 바람 냄새. 사랑 뿐 아니라 몽골과 고려 사이에서, 왕과 가문의 이득 사이에서, 야망과 여자로서의 사회적 성차별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이 마침내 모든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듯한 그 사막 바람 냄새가 잊혀지지 않는, 안타깝지만 신비롭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웠던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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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왕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도 좋다. 혹은 그리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고려라는 배경에 이끌려도 좋다. 어떤 식의 시작이든 '왕은 사랑한다' 속, 고려와 몽골을 쉼 없이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긴 여정이 제공할 이국적인 매력에서 헤어나오기는 그리 쉽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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