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 작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독자를 사로잡는가? 어떤 일, 어떤 삶 3
위근우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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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양쪽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책의 커다란 흐름에서 인터뷰어의 견해나 태도, 시각이 명확하다. 구성 요소에서 인터뷰이가 왜 이 주제에 어울리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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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황후 세트 - 전3권 퀸즈셀렉션
한민트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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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극 초반에, '게으른 에스틴 경'이라는 애칭을 달고 사는 주인공 이야기가 나온다.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검을 배우는 것 이외에는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한 귀족 영애 에스텔라 아르투르가 이후의 삶을 꾸리기 위해 집어든 페르소나다.
   에스텔라가 애초에 바란 삶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일신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으면서 자유로울 것.
그러나 당시 여인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한참 벗어난 그는 귀족 영애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꾸려갈 수 없으리란 판단을 마친다. 마침 아버지가 등록해 놓은 명부에는 에스텔라(女)와 에스틴(男) 둘이 올라가 있었으므로, 에스텔라로서 안전해질 동안만이라도 에스틴으로서 공직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가문의 유일한 적장자로서 검술을 모두 전수받은 그는 마음대로 실력을 조정하여 기사단 입단 시험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는 데에 성공하고, 직장인 모두가 꿈꾸는 월급도둑 생활을 시작하여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래, 여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 나를 좀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만 접는다면 아무 문제 없는 삶. 그마저도 에스틴으로서 열심히 근무하여 에스텔라의 지참금을 마련한다면 당대 여성들에게 보편적인 형태로(결혼으로) 어떻게든 끼워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틴 옆에는 항상 그를 구경하는 에스텔라가 있"었고, 그리하여 두 자아는 이리저리 붕 떠서 어느 쪽으로도 정착하지 못할 상태를 만들어낸다. 에스틴으로서도 에스텔라로서도 자기 삶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어느 선 안에서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띄어 에스틴과 에스텔라의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애초에 맨얼굴로 완전한 존중을 받아 본 적이 없었으면 모를까, 긴 시간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쳐 온 에스텔라를 장막 너머로 밀어낸 상태로 새로운 인물 에스틴이 살아가려니 양쪽에 일정 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에스텔라는 에스틴이 없으면 존중받지 못할 연약한 아가씨가 되어 버리고, 에스틴은 에스텔라를 등짐으로 짊어진 몰락 귀족가의 가장으로 안타까움을 산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고 자기 일-예쁜 아가씨와 연애를 한다든지 수련이나 아첨을 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른다든지 혹은 멋지고 전도유망한 기사님과 연애를 한다든지-에 소극적인 태도 뒤에는 어차피 자신의 검이 담장을 넘지 못하리라는 사회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한 에스텔라가 있다. 겉으로 평화로운 이 광경으로 그 삶이 끝났더라면, 아르투르 가의 마지막 적손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골라 간 시월드에서 '저 잘난 것만 알고 검이나 휘두르느라 집안일에 서툰 골칫덩이 며느님' 취급이나 당하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건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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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양명과 월급도둑 사이에서

 에스텔라의 인정 욕구에 트리거로 작용하는 인물로서 기사단 입단 시험에서 만난 티소엔 크랄리디안이라는 인물이 있다. 기사로서의 향상심을 매번 부르짖으면서, 에스틴이 그 좋은 실력을 가지고 치안대에서 썩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인물이다. 시험장에 있던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에스틴의 진짜 실력을 알아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입신양명은 전형적이어서 고결하다. 단순히 더 높은 지위를 갖기 위해 수련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향상된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에 검을 놓지 않는다. 또한 에스틴이 자기 실력을 감추고 치안대에서 비비고 있는 것을 성취욕이나 향상심 같은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라고 정말로 믿는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대련을 신청해 에스틴을 자극하고, 마침내는 에스틴이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된다. 에스틴이 조금만 더 치안대에서 비비고 있었더라면, 이 둘은 서로가 서로의 자극제가 되어 검술과 우정을 함께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티소엔 크랄리디안은 에스틴이 치안대 기사로서 '꿀보직에서 월급도둑질을 하며' 자신의 검술 실력도 보전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였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 간 권력 다툼이 일개 치안대 기사인 에스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자, 에스틴/에스텔라에게 입신양명과 월급도둑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곡절인즉, 차기 황후로 지목된 태자의 약혼녀가 마녀의 숲에서 살해당한 것. 여인의 비명 때문에 달려간 살해 현장에서 범인과 한참 동안 검을 맞대고 돌아온 에스틴은 그 숲에 있던 살인범이 태자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는 진부한 이야기다.하필 그 태자는 작고한 황제가 직접 공언한 후계자인 데다가 어려서 용병 생활을 하느라 전장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 에스틴과 태자 클레오르는 안면을 트고 모종의 거래를 하기에 이른다. 그 거래란 향후 5년간 에스틴 아르투르는 여장을 하고 황태자의 약혼녀로서 그의 즉위를 방해하는 세력으로부터 어떠한 생명의 위협을 받더라도 살아남을 것. 


이전까지는 에스틴 자신이 생각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입신양명과 월급도둑 둘 다를 이룩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태자의 약혼녀로 지목된 상황에서는 입신하여 이름을 날리든지 치안대에 붙어앉아 월급도둑 생활을 계속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 거래에서 미묘한 구석이라면 이것이다. 클레오르는 '에스틴 아르투르'에게 '황태자비' 자리를 제시했다는 점. 클레오르가 검을 맞댄 상대는 대외적으로 에스틴으로 근무하고 있는 치안대 기사이고, 당연히 남자이다. 그 무위를 인정하면서 그에게 대신의 자리가 아니라 '황태자의 약혼녀, 나아가 황태자비/황후'의 자리를 제시했다. 남자에게 여장을 제안했는데, 그 남자가 하필 남장을 한 여자라서 여장을 한 남자에게 여장을 제안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살해 위협을 훌륭하게 헤쳐 나가면서 남자인 것도 여자인 것도 들키지 말아야 하는 기묘한 상황. 
   클레오르와 에스틴/에스텔라 둘 다에게 이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에스틴/에스텔라는 이 계약을 받아들일 경우 더는 예비 태자비 살해 사건에서 발을 뺄 수 없게 될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입막음 조로 클레오르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처지다.
더하여 이것은, 에스틴으로서 티소엔과 계속 교류할 것인지 에스텔라로서 클레오르와 동업할 것인지를 고르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에스틴/에스텔라의 상황이 특수하기에 일에 동원된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에게 속사정을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레오르에게는 첫째로 아무리 개국 공신 집안이라 하나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아르투르 가를 사돈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무런 정치적 이득을 주지 못한다. 에스텔라 이후에 들어갈 새로운 태자비 또는 황후를 정하려는 움직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본래의 성별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신 앞에서 황제로 인정받는 절차 때문에 여신에 대한 모독으로 몰아갈 여지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제 한 몸 지킬 능력이 있는 에스틴을 에스텔라로서 약혼녀 자리에 세우면 약혼녀를 지키기 위해 들어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또 같이 있는 동안 어느 정도는 그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스텔라는 평생 벌어도 다 못 벌 엄청난 돈과 안정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되는 미래에, 클레오르는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동업자와 약간의 흑심에 기대를 걸고 계약을 체결한다. 한쪽은 동업자로, 한쪽은 호감을 더해서 서로를 대하니, 일정한 긴장감을 처음부터 갖고 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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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우뚝 선 여인

무가의 적녀로서 검을 배운 여인이 에스텔라 하나만은 아니었으나, 살아남기 위해 적들과 싸우면서 능력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숙녀들의 사회에서는 배척당한다. 그들에게 입신양명이란 남성의 학문을 배워서 이름을 드러내는 쪽보다는 아버지/남편의 이름을 빌어 사교계에서 성공하여 그 권력을 과시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사회화되어 왔고, 다른 길을 찾고자 해도 롤 모델 자체가 전무하다. 에스텔라처럼 자기 능력-중에서도 무예-을 채용 기준으로 발탁된 인재는 제국에선 아예 없다시피하다. 뜻하지 않게 그는 이 분야에서 최초로 길을 닦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에스틴이나 에스텔라 중 어느 한쪽을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덕분이다. 끝까지 딸의 선택을 존중해 여러 가지 안배를 해 놓은 리스칸 경의 배려나, 클레오르와의 계약 조건(내 옆에 5년만 있으면 그 이후에는 에스틴으로 살건 에스텔라로 살건 적절한 지원을 해 주겠다)이 방패가 되어 주었으므로 그는 자기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가령, 기사단 하나에 육박하는 암살자 집단을 홀로 상대하는 일이라거나, 황후로서 성창과 성검의 인정을 받은 후 마녀들의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일이라거나. 
하필 여인으로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날(약혼식, 결혼식 등)을 골라 벌이는 난전이라니. 이만큼 그가 '알펜슈타인의 황위계승자의 배우자'로 발탁된 이유를 보여 주는 장면은 더 찾기 힘들 것이다.

에스텔라의 멋짐은 여기서부터인데, 그는 애초에 높은 자리를 바란 것이 아니라 돈 많은 백수의 삶을 꿈꾸었기 때문에 임무(생명의 위협을 이겨내고 살아남아라)를 초과 달성(위협하는 자들을 없애 버렸다!)하고 쓰러지면서 무엇보다 먼저 인센티브를 찾는다. 제 나름의 입신(아르투르 검술의 궁극을 보았다)도 완성했고 양명(제국을 구해 황제의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성창과 성검의 인정을 받은 최초의 황후다)도 완수하였으니, 이제 월급도둑질을 하며 편안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에스틴의 실력을 직접 본 클레오르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여인의 몸으로 무력을 쓴다는 것 자체를 믿지 않았고, 그리하여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에스텔라/에스틴은 관중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 준다.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그 활약을 직접 본 사람들 말고는 다들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하지만, 그를 얕잡아 보고 괴롭히려던 쪽이 놀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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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두려움 때문에 생기고,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에스텔라와 티소엔, 클레오르가 살고 있는 알펜슈타인 제국은 천 년 전 '마녀'라는 생물체로부터 인간을 구한 남자의 혈손이 지배한다. 황실의 정통성은 마녀를 절멸에 가깝게 토벌했다는 무공(武功)에서 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 마녀는 제국의 공적(公敵)이다.
천 년 전의 마녀들은 인간이 살아가자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죄악(살기 위해 나무 열매를 따먹거나 자연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짓거나 고기를 얻기 위해 살육을 하거나 가구를 만들기 위해 식물을 베는 등)을 견딜 수 없이 혐오하였으며, 그리하여 자기들의 영역에서 인간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실제로 해당 구역의 인간은 막대한 해를 입어 존립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절멸할 위기에서 간신히 황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 그들은 마녀가 자성(雌性)의 생명체이고 인간의 형상을 비슷하게 닮았다는 것만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의심받는 건 인간 여자 한정이다. 이제 인간 남자들에게는 여자를 핍박할 좋은 명분 하나가 생겼다.

    둘, 알펜슈타인 제국의 정통성은 크게 혈통과 무공에서 나온다.
시황제(始皇帝)가 여신 세베르이나의 축복을 받아 마녀를 무찔렀다. 그의 혈통을 진하게 이은 자만이 여신 세베르이나가 남긴 유물인 성창과 성검을 다룰 수 있고, 이는 마녀를 대적하기 위한 무기이다.
말인즉, 마녀와 대적할 무력이 있더라도 타고난 혈통이 받쳐주지 않으면 황제로 인정받을 수 없고, 혈통이 받쳐주더라도 실제로 마녀와 싸워 이길 능력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황제로서 치세를 매끄럽게 이어갈 수 없다는 소리다.
   황제의 조건에 혈통이 관여한다는 사실 하나로 '완전한 시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등장하여 황위를 탐내었으며 황실이 마녀를 몰아낸 집단이라는 사실 하나로 황제의 뜻을 멋대로 넘겨짚은 주제넘은 자가 나타나 그 백성 중 가장 약한 자를 핍박하였다.


애초에 인간 일반을 혐오하고 쓸어 버린 온전한 마녀 그 자체에겐 찍소리도 못 하고 꼼짝없이 당하기나 했으면서, 진짜 마녀를 구분하는 방법조차 모른다. 먼 옛날 자기네가 핍박당한 기억만 생생하고 그들이 어떤 특징을 띠는지 같은 기본적인 사항조차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마녀가 공적인 이유가 너무 뚜렷하니 이것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 여자를 족치는 데에나 편하게 이용했을 뿐, 진짜 마녀를 색출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이야기. 한때 마녀를 두려워하였고 그 두려움이 신상의 안전을 입으니 혐오로 변하였으며, 일반화한 혐오는 애초의 대상과 다른 자를 공격하는 데에 편리하게 이용해먹는다.

   그리하여 얄궂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통쾌한 부분은 제국의 대 위기로 인해 힘을 얻은 약자들이 제 좋을 대로 연대하기도 하고 홀로이 행동하기도 하며 그때까지 저를 괴롭히던 '강자'를 응징하는 부분이다. 
정작 힘을 얻어 강해진-그리하여 실제로 '인명'을 해친- 자에게는 옴짝달싹도 못 했으면서 여전히 약자로 남은 자들을 그들과 한패라는 핑계로 '응징'하러 운집한 폭도들이 무슨 꼴을 보였는지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마녀 족치게 내놓으라던 놈들이 진짜 마녀가 힘을 갖고 나타나니 아무것도 못 하고 흩어지는 꼬락서니라니. 그들이 족치고 싶었던 건 마녀가 아니라 힘없는 여자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투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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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다행히 이 난장판을 새 황제 클레오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수습하는데, 그 장면이 걸작이다.
저에게 면담을 요청한 황녀이자 마녀의 이야기(자기들의 안전을 지켜 달라는 말)를 끝까지 듣고 그를 승낙하는데, 알펜슈타인 황실의 존재 의미를 십분 이용해먹는다.

  첫째로 황명 중에 난리통에 대피를 요청한 자들을 엄중히 보호하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둘째로 그 황명을 고작 장군이나 신전 따위가 곡해해서 어긴다면 이는 반역이라는 이야기. 또한 신전이 그렇게나 그간 막대한 권력을 누려 왔으면 뭔가 소용이 있어야 했는데 황제가 바로설 때까지 신전이 한 일이라곤 천 년 전에 절멸한 마녀가 이토록 번성하도록 판을 깔아준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마녀 문제는 이제부터 오로지 황실의 영역이라는 점을 공언한다.
   이로써 새 황제 클레오르는 첫째로 항명한 자들을 제압하였으며 둘째로 신전으로부터 황실의 권력을 회수해 왔다. 그리고 셋째로는 감히 누구도 '마녀사냥'을 사사로이 입에 담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제국이 정말로 박멸해야 할 무리(양민 학살에 가담한 마녀 무리)만을 깔끔하게 처리한 후 환궁한다.
   모든 일이 끝나고 살아남은 마녀들은 새로운 수장의 뜻을 따라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제국에 남은 자들은 자기가 마녀라는 티를 내지 않고 살려 노력하고, 새 수장을 따라간 자들은 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기들의 나라를 건설한다.


난리통을 수습하려다 보니 사람이 하도 죽고 사라져서 너무 바빠진 공직사회가 여자에게 직책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에스텔라가 아르투르 영애로서 사귄 영애들 중에 가문의 힘을 배제하고 독립한 자가 있었고, 그가 있음을 알아달라는 청원을 에스텔라가 전달하자 클레오르는 '글을 아는 여자'에게 관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고는 합격자를 그대로 중용한다. 무서운 마나님께 알아서 기었다지만, 작업 보조자 말고 온전히 업무를 소화하는 자를 성별 관계없이 채용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는 점이 치밀하다. 
   관리가 되거나 기사가 되는 데에 성별이 제도적으로 장애가 되지 못하니 적어도 법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정이 되는 자는 누구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장족의 발전이다.
그조차 꿈꾸지 못하고 여전히 핍박받는 자는 산맥 너머에 있다는 마녀들의 나라로 가면 행복해진다는 소문을 믿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안전망은 갖추었다는 소리다.
공고한 차별과 배제를 걷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요소로 재단당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자들이 올바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
힘을 키워내는 것도, 좋은 환경을 만나는 것도, 키워낸 힘을 올바르게 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지만, 하여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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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 32년 경력 윤영미 아나운서의 #누구도가르쳐주지않았던 #술술읽히는 말하기 안내서
윤영미 지음 / 어나더북(Anotherboo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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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학생 때 맞춤법 공부하던 기분으로.읽게 되는데, 너무 기초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예시만 바꿔가며 적어 놓은 책이라서 서글프다.

이런 걸 많이 틀리니까 굳이 책으로 엮어서까지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 거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 국어 활용 능력이 괜찮기는 한 건가 싶어 암담할 따름.

너무 기초라서 나한텐 필요 없길래 읽고 바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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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매리지 - 지나치게 사랑 받는 신부, Corset Novel
아소 미카리 지음, 아오이 후유코 그림, 소얼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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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소꿉친구들과 결혼, 그래 이해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해해. 근데 이 어리석은 공주님은 무조건 사랑한다고만 하면 남자로 보려고 하니 답답해 죽겠다.

이전까지는 구애남이었더라도 완력을 써서 성적 접촉을 시도한 순간부터 그놈은 쓰레기다. 하물며 강간이라니.

여기 나오는 공주님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강간범이 바라는 결말이다. 초반에 놀라고 싫으면 소리라도 지를 일이고, 몸이 자유로워졌으면 당장 시녀부터 불러들여 매무새 정돈하고 공주의 위엄을 갖춰 귀족 자제들이 감히 공주의 방을 넘봐 보안을 허술하게 만든 벌을 내릴 일이지, 그놈들 이야기를 다 들어 주면서 마음을 흔들다니 도대체 될 말인가.

게다가 더럽게도 구애남 둘이서 무려 공주를 상대로 착한 경찰 나쁜 경찰 프레임을 씌워 버린다. 둘 다 강간범 맞잖아. 사랑이라고 포장한다고 강간 상황이 화간 상황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고. 왕실이 공주를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여성으로 키웠다면 그 구애남 둘이 공주의 침실에 숨어든 날 이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부마도위 후보에서 그 둘만은 제외했어야 한다. 감히 왕실의 혈통을 머저리로 보고도 그를 제대로 보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죄를 물어야지, 나만 입 다물면 모두가 지금처럼 행복하다니 도대체 왜 희생자가 가해자의 논리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가.

우에노 지즈코 여사가 전에 강연 와서 말하길 일본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싫다"는 말까지 빼앗았다고 그러던데, 세상에 여자를 독자로 설정했다는 소설에서마저 그 말을 느낄 줄은 몰랐다.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는 여자 쪽이 싫다고 반항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부치면 결국 육체적 쾌락을 느껴 저항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되리란 거, 판타지다. 실제론 그래선 안 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치료를 받아야지 옹호할 게 아니야. 도대체 이게 왜 로맨스 장르에 있는 건가. 이건 성폭행 피해자 가이드북에 잘못된 대응 편이나 강간 판타지 설명하는 위치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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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트리니티 매리지 - 지나치게 사랑받는 신부
아소 미카리 지음 / 코르셋노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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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소꿉친구들과 결혼, 그래 이해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해해. 근데 이 어리석은 공주님은 무조건 사랑한다고만 하면 남자로 보려고 하니 답답해 죽겠다.

이전까지는 구애남이었더라도 완력을 써서 성적 접촉을 시도한 순간부터 그놈은 쓰레기다. 하물며 강간이라니.

여기 나오는 공주님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강간범이 바라는 결말이다. 초반에 놀라고 싫으면 소리라도 지를 일이고, 몸이 자유로워졌으면 당장 시녀부터 불러들여 매무새 정돈하고 공주의 위엄을 갖춰 귀족 자제들이 감히 공주의 방을 넘봐 보안을 허술하게 만든 벌을 내릴 일이지, 그놈들 이야기를 다 들어 주면서 마음을 흔들다니 도대체 될 말인가.

게다가 더럽게도 구애남 둘이서 무려 공주를 상대로 착한 경찰 나쁜 경찰 프레임을 씌워 버린다. 둘 다 강간범 맞잖아. 사랑이라고 포장한다고 강간 상황이 화간 상황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고. 왕실이 공주를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여성으로 키웠다면 그 구애남 둘이 공주의 침실에 숨어든 날 이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부마도위 후보에서 그 둘만은 제외했어야 한다. 감히 왕실의 혈통을 머저리로 보고도 그를 제대로 보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죄를 물어야지, 나만 입 다물면 모두가 지금처럼 행복하다니 도대체 왜 희생자가 가해자의 논리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가.

우에노 지즈코 여사가 전에 강연 와서 말하길 일본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싫다"는 말까지 빼앗았다고 그러던데, 세상에 여자를 독자로 설정했다는 소설에서마저 그 말을 느낄 줄은 몰랐다.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는 여자 쪽이 싫다고 반항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부치면 결국 육체적 쾌락을 느껴 저항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되리란 거, 판타지다. 실제론 그래선 안 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치료를 받아야지 옹호할 게 아니야. 도대체 이게 왜 로맨스 장르에 있는 건가. 이건 성폭행 피해자 가이드북에 잘못된 대응 편이나 강간 판타지 설명하는 위치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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