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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1995년, 세간에 큰 충격을 준 동경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은 도심에서 무차별 살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었지만, 사건의 주범인 옴진리교 신도들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이었다는 것 또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을 것 같은 그들이 어떤 연유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심리에는 삶에 대한 비관과 희망에 대한 갈구가 있었고, 마침맞게 나타난 종교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상기한 사건이 떠올랐다. '사랑과 집착, 상실과 믿음, 열정과 광신 사이'라고 소개된 표지 뒤의 문구가 딱 알맞는 소설이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피비'는 피아노 신동으로 자랐지만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죄책감과 슬픔에 빠진다. 방탕한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피비는,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 억류됐던 경험을 통해 종교를 창시한 '존 릴'을 만나며 해방감과 삶의 희망을 느끼고, 종교에 광적으로 심취하며 폭탄 테러를 저지른다.
피비의 연인인 '윌'은 한때 신학대학에 다닐 정도로 독실한 교인이었지만,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피비를 사교(邪敎)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피비를 향한 윌의 사랑은 점차 집착으로 변질되고, 피비는 윌의 곁을 떠나고 만다.
피비는 이민자로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에 집착했고, 신앙을 잃은 윌은 피비에게 일종의 분노와 질투를 느끼며 피비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들의 광신(狂信)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목의 유래가 된 'incendiaries(불을 지르는, 선동적인)'의 의미처럼, 우리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에 기대고자 하는 욕망을 품곤 하지만, 그릇된 욕망은 결국 파멸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