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2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 지음, 방교영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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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을 읽어본 경험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전부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작가의 특징인 자아 분열과 내적 독백이 이어지는

그의 소설은 읽기가 과히 쉽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아직 도끼옹의 작품들을 몇 권만 읽어봤기 때문에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가 쓴 작품들 중 몇몇은 정말 넘기 힘든 산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러 수교 30 주년을 기념하는 [ 5+5 ]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으로 발간된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 작가의 단편 소설집 [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 은 약간 다른 느낌의 러시아문학이다. 1950년대 쯤 쓰여진 이 단편들은, 산문 쓰는 시인이라고 불리는 카자코프 작가만이 가진 서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십년 전 이야기라서 그런지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들,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의 넓은 품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을 잘 묘사해내어서 읽는 동안 몇몇 한국의 서정적 작품들 [ 소나기 ] 나 [ 봄봄 ] 등이 떠올랐다.

여러 단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엔 책 제목과 동일한 단편인 [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 와 스스로 못생겼다고 여기고 사랑을 갈구하는 쏘냐의 이야기인 [ 못생긴 여자 ] 였다. 카자코프는 인간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인간소외와 고독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 등등을 다루고 있다. 당시 러시아 분위기가 그랬던 걸까? 개인의 관심사에만 몰두하고 남을 돌보지 않는 개인주의와 이기심 그로인한 권태와 우울감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남은 희망이 있다면 위로받을 자연이 있다는 것이다.


크리모프는 행복했다!

크리모프는 낚시를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으며 텐트에서 잠을 잤다.

[중략] 낮에는 따듯한 강물에서 수영을 했으며, 저쪽까지 헤엄쳐 가 갈대 숲에 기어올라 늪지 냄새를 들이켰다.

그렇게 두 번의 낮과 두 번의 밤을 보냈고, 셋째 날 저녁 즈음에 배낭에 창꼬지 두 마리를 넣고

가무잡잡하고 홀쭉해진 크리모프는 홀가분하게 고속도로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모스크바행 보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고서 크리모프는 삼 일 전 새벽 이곳에서 내린 것을 맥없이 회상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를 생각했고,

담뱃불을 붙이며 심하게 떨던 그녀의 입술과 손을 떠 올렸다.

“아, 나 참으로 비열한 인간이구나!” 숨을 헐떡이고 소매로 땀을 닦으며 크리모프는 중얼거렸다.

“아~아~아!”그리고 크리모프는 아플 만큼 세차게 자신의 무릎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옆자리의 아름다운 숙녀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낚시를 할 것에만 들떠서 그녀를 무심하게 대한 크리모프. 그녀에게 한번쯤 관심을 보여줄 수도 있었건만,, 그는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려다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옛말에 기회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앞머리채를 잡아채어야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눈 앞의 이익에 취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크리모프... 고독과 소외는 자초한 것이다 라고 저자가 말하는 듯 하다.

모두가 즐거웠지만, 오로지 쏘냐만 고통스럽고 우울했다. 쏘냐의 뾰족한 코는 보드카로 빨개졌고,

머릿속은 웅웅거렸으며 그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않았고, 모두가 흥겨웠고, 모두가 이날 밤 사랑에 빠졌지만,

아무도 쏘냐에게 반하거나, 춤을 청하지 않았다는 모욕감에 심장은 애처롭게 뛰었다. [중략]

쏘냐는 자신이 결국 여자이며, 어째든 간에 자신에겐 심장이 있고, 영혼이 있고,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행복해지리라 생각했다.

오! 미련한, 미련한 바보야. 쏘냐는 내면의 힘과 매력을 느끼고, 홀가분하고 또 분노 했으며,

힘차게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고, 밝게 빛나며 떨어지는 별빛 아래 어둠 속 혼자라도 좋았다.

[ 못생긴 여자 ] 의 주인공 쏘냐는 현재 자신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만

신경을 쓰고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 - 사실이었을 수도 ) 스스로에 대해 우울감마저 느끼고 있다.

니콜라이라는 남자를 소개받았으나 그는 그녀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고 도리어 그녀에게 상처되는 언행을 서슴치 않는다.

니콜라이때문에 상처받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에 괴로워하던 쏘냐는, 그러나, 자연과 교감하는 가운데 자연은 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해주며 인간 내부의 아름다운 본성을 일깨워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신의 내면적 자아를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된다.



물질적으로는 풍부해졌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 빈약해지고 더욱 더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현대인들. 그런 현대인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연이라는 것을 카자코프가 일찍 깨달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 [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뭔가가 결핍되어 있고 타인과의 소통을 힘들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연에서 온 존재들이다. 차갑고 무정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뒤 힐링하는 인간들의 묘사에서 나도 힘을 얻는다. 이 소설은 자연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박함과 단순한 인간의 삶을 묘사하여 즐거웠던 독서시간을 안겨준 [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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