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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평점 :
추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친근하게 미미여사라고 불리는 이 소설가는 사회파 추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쌓이고 쌓여서 곪아터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었죠 . 우리 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원작 [ 화차 ] 의 여주인공은 일본 버블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엄청난 가족의 빚을 끌어안게된 한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셜록이나 탐정 푸아로 같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설 탐정의 모습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는데요. 단편 연작 소설인 이 [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라는 작품에 본격적으로 개성강한 사설탐정이 등장합니다.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이름의 이 탐정은, 사실 셜록처럼 뛰어난 두뇌를 자랑한다거나 딱히 큰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탐정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2% 부족한 듯 어수룩해 보이기만 합니다. 이혼을 하여 혼자 살고 있고 부인에게 두고 온 모모코라는 딸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왠지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쓰레기 버리러 나온,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보기라도 하듯, 열심히 발품을 팔고 끈덕지게 증거를 찾아헤매는 우리의 사설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의 활약을 한번 지켜볼까요?
[ 절대 영도 ]
첫번째 단편인 [ 절대 영도 ] 에는 자살 미수 사건을 일으킨 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얼마전 문을 연 스기하라 탐정 사무소에 50대의 품위있어 보이는 여성이 사건 의뢰를 합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딸, 사사 유비가 욕실에서 손목을 긋고 정신이 불안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딸과 어머니가 평소 사이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위는 딸의 자살 시도 이유를 어머니인 하코자키 부인에게 돌리면서 강제로 딸을 못만나게 막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랐고 결혼 후에도 어머니에게 용돈을 타 갈만큼, 모녀 간에 갈등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딸 유비는 자살 사건을 일으킨 걸까요? 그리고 왜 사위 도모키는 거짓말같은 사유를 내세우면서까지 어머니와 유비를 못 만나게 하는 걸까요?
단편 [ 절대 영도 ] 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부부싸움 끝에 아내가 자살 시도를 하고 남편이 애써 덮으려고 쉬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 엄청난 사건이 숨어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때 미투 광풍이 불었었고 얼마 전에는 N번방 사건이 나라를 들썩였지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노리개로 여기는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일본 열도를 들썩인 경우도 있었나 봅니다. 여성을 마지 물건 다루듯했던 추악한 남성들이 최후의 결말을 맞는 이야기입니다.
[ 화촉 ]
이 이야기는 좀 독특합니다. 우리의 스기무라 사부로 탐정이 본격적으로 사건 의뢰를 맡은 경우가 아니거든요. 자신이 탐정 사무소를 낸 주인집 아주머니의 요청으로 낯선 사람의 결혼식에 동반하게 됩니다. 주인집 아주머니인 다케나카 부인과 친하게 지내는 사키코라는 여성의 조카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사키코는 이 조카의 어머니, 즉 자신의 여동생과 일찌기 의절을 한 상태라서 함께 동반하지 않게 되었죠. 그대신 결혼식을 올리는 사촌 언니인 시즈카와 친해진 딸 가나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일종의 보디가드 (?)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이죠? 결혼식 당일날 시즈카의 아버지인 미야사키가 " 파혼이야! 시즈카를 데리고 돌아가겠어!" 라고 외치는 분노의 고함소리를 듣게 됩니다. 결혼식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하객들은 허탈감에 가득찬 채 돌아가게 되는데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 단편은 같은 날 이루어져야했던 결혼식 2개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필연의 결과인지는 모르곘지만 모두 파토가 나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가나의 사촌 언니인 시즈카는 신랑의 잘못으로, 그리고 같은 홀에서, 다른 시간대에 벌어질 예정이었던 결혼식도 신부가 도망가면서 파토가 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재미는 파토가 난 결혼식 뿐만 아니라 결혼식이 파토가 날 수 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우리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아저씨 탐정 스기무라가 찾아내는데 있습니다. 모모코를 그리워하면서 매일 훌쩍대기나 하는 이 루저같은 아저씨,,,,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앞으로도 이 스기무라 사부로 라는 탐정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크게 뛰어나지는 않아도, 꽤 성실한 탐정이거든요. 해야할 일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하나하나 체크를 해가며 그날그날 해야할 일을 마무리짓는, 그런 타입의 탐정입니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지는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새로운 타입의 탐정을 만나게 되어서 좋았던 독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스기무라 사부로의 활약상을 기대하겠습니다!!